[동상이목]사냥꾼과 재벌 '프레임'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2024.09.3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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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벨 이진우 국장더벨 이진우 국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고작 2.2%의 지분으로 75년간 이어온 동업정신을 훼손하고 독단적 경영행태를 일삼고 있다."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며 적대적·약탈적 M&A라고 판단한다."



영풍과 손잡은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 선언으로 발발된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판돈을 올리는 '레이스'를 펼치며 '올인'을 향해 가는 분위기다. 양측의 공격과 반박, 해명, 읍소를 담은 보도자료, 기자회견, 탄원서, 협조공문, 소송전을 지켜보면 일관된 '프레임'이 있다. '악(惡) 대 악(惡)'의 대결이다.

창업동지이자 오랜 동업관계인 두 가문의 분쟁이 한순간 '적폐' 재벌과 '기업사냥꾼' PE(사모펀드)의 대결로 확전하는 양상이다. 엘리엇에 버금가는 약탈자본과 쇠고랑을 찬 부패재벌의 대리전을 연상케 한다. 누가 승리하든 상처뿐인 영광이다. 두 기업과 MBK파트너스뿐만 아니라 재계 전체와 PE업계 모두 상흔을 남길 수 있다.



승패를 떠나 이번 사태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포인트다. 오랜 기간 출자자, 고객, 여론을 의식하며 선관의무를 다하고 서비스를 개선한 것은 물론 상생을 외치며 부정적 인식을 희석해왔는데 일순간 극단의 네거티브 이미지를 활 끝에 장착해 서로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이걸 여론이 일반화하면 모두에게 치명상이다.

온통 무슨 문제가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반대편에서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해외 자본이 포함된 애국심이라곤 일도 찾아볼 수 없는 약탈적 세력이 국가 기간산업, 핵심기술을 뒤흔들고 지역경제를 망가뜨린다. 소수의 지분을 가진 재벌 승계자가 절차와 규정, 의결권을 뛰어넘는 전횡을 일삼으며 회사를 사유화하고 막강한 네트워크를 배경으로 방어전을 펼친다.

일진일퇴의 죽기 살기 공방전에서 이성적인 논리와 방법이 통할 리 없다. 적의 우군을 공격하기 위해 나도 비슷한 우군을 끌어들여야 하고 회사를 살리겠다는데 가만히 보면 둘 다 팔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너만 아니면 된다, 차라리 같이 죽자는 얘기다. 끈끈한 재벌 네트워크, 애국·애향심, 정치권, 지역, 학맥 모두가 뒤엉킨 여론전이 피아(彼我)를 식별하기 바쁘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 돕자는 '동지의식'은 그 자체로는 의로울 수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끈끈함'을 뛰어넘는 명분과 절차가 필요하다. 선의(?)나 의리로 참전 또는 관전하는 세력들이 자칫 예상치 못한 유탄을 맞으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자본시장에서 대기업과 PE는 필요에 따라 손을 잡거나 적이 될 수 있는 전략적 관계다. 언제든 피아가 뒤바뀔 수 있다.

하필 영풍과 고려아연은 일반주주, 시장과의 소통이 미흡한 대표적 기업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싸움을 시작하며 "쟤들 나빠요. 저희 좀 살펴주세요"라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기업사냥꾼, 먹튀, 부패재벌, 기업사유화 등 '프레임 스트레스'가 크니 약점을 잘 알고 공유한다. 공교롭게도 영풍(영풍빌딩)과 고려아연(그랑서울)은 종로 종각역 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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