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의 우아한 싸움'…산에서 찾은 치유와 행복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2024.09.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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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지리산 산행기 이지형 신간 <저 산은 내게> 10월 출간…"산 위에서 바람과 풍경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력과의 우아한 싸움'…산에서 찾은 치유와 행복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저서 <고백록>에서 '나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넓은 공간을 걸을 때 영혼이 확장되고 고양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하는 등 자연 속에서 산책을 통해 정신적 자유와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산과 숲길을 걸으며 평온을 찾고, 내면의 성장을 모색한다.

산을 오르기 좋은 계절인 가을 맞아 북한산과 지리산 등 많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명산들의 산행기가 담긴 신간이 다음달 초 나온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 이지형 씨의 신작 <저 산은 내게>(북노마드/1만7500원)다. 앞서 저자는 <헬스조선>에 '아무튼 북한산'을, <월간 산>에 '막막할 땐 산'을 연재했으며 <주역, 나를 흔들다>, <강호인문학>, <꼬마 달마의 마음수업> 등의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저 산은 내게>에 대해 "산 위에 머무는 동안 바람과 풍경이 들려주는 얘기들이 있어 틈틈이 적었다"며 "지상에서 입은 내상의 치유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산 저 산 떠도는 바람' 에 지친 몸과 강퍅해진 마음을 씻어내린 시간을 산을 오르듯 우직한 문장으로 담았다"며 "여러 해 동안 홀로 잠행한 산행의 기록을 모아 한 권의 간소한 에세이를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이러다 무너지겠구나' 싶었던 때 가 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무작정 산에 올랐습니다. 그때 '저 산' 은 정말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해주었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며 저를 적시고 있던 슬픔과 울분이 사라졌습니다.



저자는 등산을 '우리를 자꾸만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인, 못된 지구 중력과의 우아한 드잡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산에선 꽃 핀 자리, 꽃 진 자리 모두 아름답다"며 "소슬바람에 지친 맘 달래면, 흰 눈 곧 내려와 지난 사연들 덮어준다"고 했다. 이 책은 저자가 '한 걸음 한 걸음 웃음기 사라진 가파른 길을 걸으며 거칠게 숨 쉬는 당신에게' 보내는, 산에서 쓴 편지다.





[책 본문 中] 유명 시인의 노래가 아니어도, 산 구석구석엔 이웃들의 말 없는 애환들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값비싼 여가를 멀리하고 그저 해발 고도를 거스르는 데서 주말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의 수줍은 서정 말이다. 티내지 않는 이들의 은근한 서정을 발견하는 건 산행의 또 다른 기쁨이다. 그것을 누구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겠나.



저자는 산은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이고, 행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산에 올라야 한다고 외친다. 도시의 복잡함을 벗어나 자연의 순수 속으로 빠져들어 교감하며 삶의 소소한 행복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새들의 지저귐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산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몸의 감각은 자유롭게 살아나고 마음은 오히려 평온해진다.



[책 본문 中]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행복을 꿈꾸기 위해 우리는 문을 박차고 나가야 합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복음과 경전을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고, 달변의 멘토와 자기 계발서의 호언장담에 마음을 내줄 필요도 없습니다. 신발 끈을 여미고 폐쇄된 공간에서 훌쩍 벗어나는 게 우선입니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22일 서울 북한산 국립공원에 단풍이 물든 가운데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2023.10.2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22일 서울 북한산 국립공원에 단풍이 물든 가운데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2023.10.2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산은 아주 오랫동안 거기 그대로 있었기에 옛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문화, 신앙, 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있다. 산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인류의 삶과 정신적 유산을 간직한 공간이다.



[책 본문 中] '넝쿨 움켜쥐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걸려 있네. 눈에 보이는 곳 우리 땅으로 한다면 오월의 강남땅도 그 속에 있으련만.'


<연려실기술>에 수록되어 있다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시다. 백운대 정상 부근에 세워진 안내 구조물의 내용이다. 원문은 물론 한자이고, 제목은 '등백운봉(登白雲峰)'이다. 그러니 이성계가 백운대에 직접 오른 뒤에 쓴 시다. 바다 건너 오나라, 월나라의 중국 땅을 어찌 육안으로 볼 수 있겠나. 하지만 한 나라를 일으킨 인물이 간만의 산행에 취해 뱉은 호언과 장담이니 넘어가 주기로 하고 시를 살피자. 중요한 건 이성계가 '넝쿨'을 움켜쥐며 '푸른' 봉우리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제 몸속으로 품고 와 내뿜는 도시의 독기와 우악스러운 등산화들의 공격으로 지금은 밋밋한 바위의 연속일 뿐이지만, 500년 전엔 달랐던 모양이다.




[책 본문 中] 추사는 서른을 즈음해 두 차례 북한산 비봉을 오르고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했다. 이때 산행 루트에 승가사가 언급된다. 북한산성으로 통하는 비봉능선은 향로봉에서 시작해 비봉, 승가봉을 거쳐 문수봉에 이른다. 향로봉이 남쪽, 문수봉이 북쪽이다. 승가사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가면 비봉과 승가봉 중간 지점에 서게 된다. 그곳에서 비봉의 북쪽 비탈은 지척이다. 굳이 남쪽 비탈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북쪽이든 남쪽이든 요즘 나오는 값비싼 등산화를 신고도 오르기 힘든 곳이 비봉이다. 게다가 추사가 비봉을 오른 건 6월과 7월, 이미 여름 들어서였다. 추사에 대한 존경의 정도를 높여 가는 것은 그렇게 험난한 산행을 마다하지 않던 고증의 열정 때문이다. 당대의 예술적 천재가 푹푹 찌는 여름,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암반의 꼭대기에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 멋지지 않나. 간결하고 강인한 추사 필체의 요체는 어쩌면, 북한산 암반을 툭툭 치고 오르던 그의 건강한 몸에 담겨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장 산에 오르고 싶다. 둘레길이나 집 근처 공원이라도 걷고 싶어 신발부터 신고 싶어진다. 산 정상에 올라 넓게 펼쳐진 눈앞의 풍경을 보면 고민과 걱정이 잠시나마 사라질 것임을 산을 올라본 사람이면 잘 안다. 가까운 산을 오르는데는 복잡한 계획이 필요하지 않다. 오직 중력과 반대로 발걸음만 떼면 된다.



[작가의 말] 되도록 많은 분이 저의 '좌충우돌' 산행기를 읽고, 지구인의 숙명인 중력과의 한판 승부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주말을 이용해 배낭 하나 메고 중력과 맹렬히 싸우다 보면 허벅지가 딴딴해지고, 숨이 거칠어지면서, 문득 지구를 이탈해 달에 가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인생을 오르내리고 계시나요? 그곳이 어디든지 중력을 잊고 통통 튀면서 가볍게 오르내리시길 기원합니다. 행복은 지금 있는 공간으로부터의 '이탈' 가능성에 비례합니다. 해발 고도를 높일 때 우리는 행복에 잠길 수 있습니다.

자, 워밍업은 끝났습니다. 이제 산에 오를 차례입니다. 우리, 산에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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