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9일(현지시각)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또 럼 베트남 국가 주석 겸 공산당 서기장의 환영식에 참석을 하고 있다. 2024.08.20 /AFPBBNews=뉴스1
마닐라 소재 싱크탱크 아시아태평양진보경로재단 루시오 피트로 연구원은 26일 홍콩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베이징(중국 지도부)은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활용해 필리핀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며 "중국은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 필리핀에 대한 지역적 지원을 약화시키고 필리핀을 도발자로 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 대만을 제외하면 중국에 가장 강경하게 맞서는 아세안 국가가 바로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지도하에 중국의 압박이 강화될수록 미국과 전면적으로 결합하는 한편, 해상분쟁에 대해서도 매번 강력한 물리적 대응에 나섰다. 실베르토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은 "중국과 영토 분쟁은 존재적 문제"라며 강경 대응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아세안이 대중국 견제라는 본령에 충실하기 시작한 건 중국의 개혁개방 후 동남아 패권 압박이 공공연해지면서다. 압박이 커질수록 아세안은 미국과 더 밀착하며 중국을 견제했다. 지난해 9월 아세안 탄생 이후 최초로 이뤄진 남중국해 해군 연합훈련은 아세안의 위기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훈련은 중국이 아세안 포위망을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풀어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였다.
미국과 필리핀 외무·국방 장관들이 30일 퀘존시티 캠프 아기날도에서 개최되는 양국간 '2+2' 회의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엔리케 마날로 필리핀 외무, 길버트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 순이다. 2024.07.30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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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라오스와 베트남, 브루나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7개국 외무장관이 지난 4월 이후 순차적으로 중국에 초대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총책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올해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미얀마를 방문했다. 방문지역만 놓고 보면 필리핀을 제외한 아세안 국가들에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상대적으로 필리핀에 대해서는 실질적 군사적 압박을 가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긴장완화 합의'는 체결 직후부터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양국은 지난 8월에만 5차례 선박충돌 등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갈등을 빚었다. 양국 간 영토분쟁의 핵심인 사비나암초(중국명 셴빈자오)와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 스플래틀리 군도 등을 둘러싸고 물대포 공격은 일상이다.
필리핀 외 국가들과는 구체적인 협력 결과물이 도출된다. 중국은 미국의 주요 비(非)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인 태국과 지난달 합동 공군훈련을 실시했고 이달 초엔 싱가포르와도 해상합동훈련을 진행했다. 인도네시아와는 지난달 자카르타에서 열린 첫 '2+2 합동 외교 및 국방대화'에서 2015년 해상영토 분쟁으로 중단된 양자 군사훈련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중국 해양 경비선과 필리핀 해경선이 26일 (현지시간)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 사비나 숄에서 지나 가고 있다. 2024.08.27 /AFPBBNews=뉴스1
아세안은 중국 입장에선 포위망이지만, 미국 등 서방국가들 입장에선 중국과의 사이에 중요한 완충지대다. 아세안의 대열이 흐트러지는 건 적색경보나 다름없다.
미국국방대학 국가전략연구소 앤드류 태퍼 연구원은 SCMP에 "중국의 분열 전략의 목표가 아세안이 중국에 집단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면, 중국은 이 측면에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칼 세이어 명예교수 역시 "지난 몇 년간 아세안은 남중국해에서 커지는 중국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단결해 대응한 적이 거의 없으며 집단행동 여지는 점점 더 작아진다"며 "이런 흐름은 중국이 분열시켜 정복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