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의정갈등에 '번아웃' 일보 직전 상급병원들

머니투데이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2024.09.2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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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잘 계획되지 못한 성급한 의료정책을 고수하는 정부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병원을 떠난 전공의로 인해 대형병원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또한 국민은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할까 걱정이 많다. 국민은 걱정하거나 말거나 정부는 무리한 의대정원 증원을 관철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병원을 지키는 교수들은 과중한 진료와 밤샘당직으로 지쳐간다. 중증환자의 진료를 대부분 담당하는 대형병원은 진료수입 감소로 전전긍긍한다. 대형병원들의 수입이 줄어 문을 닫는다면 중증환자들은 어디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대형병원의 위기는 병원 경영진만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부와 국민들이 걱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형병원은 대부분 사립병원이다. 즉 적자가 나면 언제든지 망할 수 있는 병원이란 점이다. 하지만 국민들이나 정부는 대형 사립병원을 삼성전자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항상 돈을 많이 벌고 부자병원이라 망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형 사립병원 2곳만 문을 닫는다면 중증환자 치료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전공의도 없는 상황에서 대형병원들이 이 정도 버티고 중증환자들의 치료에 큰 문제가 없게 했다면 정부도 이제는 국민을 위해라도 해결책과 보상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의 보상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보상은 의사 당직비 수준이어서 병원경영의 위기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전달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정책기조 중 하나는 대형병원들에 대한 규제였다. 특히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의 쏠림현상이 심화해 지역 거점병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됐다고 판단해 서울의 대형병원들은 과도한 규제를 받았다. 이제까지 많은 규제정책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특진비를 없앤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지만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들이 특진비를 받아 수익구조가 좋아지고 그 돈으로 시설투자를 많이 해서 더 좋은 병원이 되다 보니 환자 쏠림현상이 더 강화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진비를 없애 대형병원들의 발전을 제한하려고 했다. 하지만 특진비가 없어지자 지방환자의 서울 쏠림현상이 오히려 강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진료비도 같은데 가능하면 서울 가서 치료받겠다고 한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전공의 수를 정부가 관리하게 된 것이다. 사실 몇 명의 전공의를 뽑아서 교육하겠다는 결정은 병원이 해도 무방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형병원이 잘되는 이유는 싼 인건비로 전공의를 쓰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인턴 수도 줄이고 전공의 수도 줄이면 대형병원이 지금처럼 계속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서울의 몇몇 대형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싶어하는 의대 졸업생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지방병원은 전공의가 없어서 병원경영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필요한 결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고려해보면 결국 우리나라 병원의 수익구조는 매우 취약하며 인건비가 싼 전공의가 없으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병원이 진료수입만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생존은 언제나 병원의 몫이었다.



예전에 필자가 과장 직책일 때 방사선치료는 통상 새벽 2시까지 진행됐다. 어떤 날은 새벽 5시까지 환자를 치료하기도 했는데 환자의 안전을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방사선치료실을 증설키로 결정했다. 그 당시 방사선치료실 5개를 증설하는 허가에만 6개월이 소요됐다. 현재 대형병원들은 필요에 따라 병실 하나를 늘릴 수 없는 규제 속에서 어렵게 운영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환자를 생각하면 대형병원들의 사회적 역할이 잘 유지되기를 바란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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