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출간된 인텔의 역사서로 불리는 인텔 트리니티(마이클 말론 지음)의 책 표지. 사진 오른쪽부터 인텔 창업자이자 '무어의 법칙'을 만든 고든 무어 인텔 2대 CEO, 세계 최초의 집적회로(IC)를 만든 인텔 공동창업자이자 초대 CEO 로버트 노이스, 인텔의 1호 사원이자 3대 CEO인 앤디 그로브.
20년 전인 2005년 4월 반도체 산업의 성장공식인 '무어의 법칙(Moore's Law)' 발표 40주년을 맞아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 명예회장(하와이)과 기자가 진행한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나온 얘기다.
한 때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었던 인텔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퀄컴은 1996년 한국에서 세계 최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이동통신 기술을 상용화하면서 급성장한 미국 이동통신용 반도체 기업이다. PC 시대 칩의 패권자를 모바일 칩의 패권자가 인수하려 든 셈이다.
MS 윈도(OS)와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를 결합한 '윈텔동맹'은 PC시대엔 철옹성처럼 느껴졌다. 구글과 애플, 삼성이 주도하는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영원한 제국이 없듯 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 1위 휴대폰 업체 노키아의 몰락이 신생(?) 스마트폰 업체 애플로부터 왔듯, 인텔의 위기는 신생 플래시메모리 업체 삼성전자로부터 시작됐다.
3명의 인텔 창업 동지를 다룬 책 '인텔 트리니티'(The Intel Trinity: 저자 마이클 말론)에는 2005년 새 CEO로 취임한 폴 오텔리니가 진행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함께 그 당시의 위기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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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려운 도전은 (인텔의 새 먹거리인)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나타났다. 2006년 하늘에서 떨어진 듯 한국의 대기업 삼성이 뛰어난 성능의 플래시 메모리를 발표하고, 금새 인텔의 사업영역에서 큰 점유율을 가져갔다. 삼성이 시장에서 승리하려고 보여준 노력은 마치 '이 세상과 전혀 다른 차원의 맹렬함'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논설위원이었던 저자는 "당시 인텔의 경영진은 (삼성의 맹렬함을 보고) 눈에 보이게 떨었으며, 그 긴장감은 인텔이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강렬함이었다"고 소개했다.
인텔의 창업 모토는 'What's Next?'다. 항상 그 다음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는 회사였다. 그런 고민은 창업세대의 퇴진과 함께 위기를 맞았다. 진공관 다음은 실리콘 반도체, 자기테이프 저장장치 다음은 D램, D램 다음은 CPU로 이어지던 성장은 모바일 시대에서 삼성과 애플에 발목이 잡혔다.
인텔의 추락은 현실에 안주하고 관료주의에 빠져 '다음'을 찾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선 때문이다. 자기 만족에 빠져 있었고, 조심스러웠고, 늙었었다는 평이 나온 이유다. 이게 쌓이고 쌓인게 지금의 인텔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인텔이 겪었던 것과 같은 위기다. 지금 보여줘야 하는 게 한국인 특유의 맹렬함이다. '비행기 삯 아끼기'와 '토요일에 출근하기'와 같은 1차원적 방법이 아닌 'Next'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그 비전을 향해 '이 세상과 전혀 다른 차원의 맹렬함'으로 달려가는 그 모습을 다시 보여줄 때다. '인텔이 두려워했던 그 모습처럼'.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