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빚 때문에 필리핀 킬러 고용…'750만원'에 한국인 숨졌다[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이은 기자 2024.09.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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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청부 살인 범행이 발생한 필리핀 앙헬레스의 모 호텔 인근.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청부 살인 범행이 발생한 필리핀 앙헬레스의 모 호텔 인근. /사진제공=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2017년 9월 25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3년 전 필리핀에서 현지인들에게 돈을 주고 60대 부동산 임대·투자업자 허모씨를 살해하도록 청부한 혐의(살인 교사)로 한국인 신모씨(구속 당시 43세)를 구속했다. 해외에서 킬러를 고용해 한국인을 피살한 교사범이 구속된 첫 사건이었다.

신씨는 2014년 2월 18일 오후 7시40분쯤 발생한 살인 사건을 교사한 혐의를 받았다. 사망한 허씨는 필리핀 팜팡가주 앙헬레스시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쏜 45구경 총알 6발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허씨는 일행 3명과 함께 호텔 인근 식당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당시 상황은 주변 CC(폐쇄회로)TV에 고스란히 담겼고,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서 수사를 시작했다.

빌린 5억원 도박으로 탕진…돈 못 갚게 되자 살인 청부
허씨는 2012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신씨의 제안으로 5박 6일 필리핀 관광을 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날 호텔 인근 식당으로 허씨를 불러낸 것도 신씨였다. 신씨는 카지노 에이전시 사업 투자 명목으로 허씨에게 2013년 3월부터 19회에 걸쳐 투자금 5억원을 받았다가 도박으로 1년 만에 투자금을 모두 탕진한 상태였다.



신씨는 허씨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그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신씨는 2014년 1월 필리핀 사설 경호원 A씨를 만나 허씨의 사진을 건네며 '이 사람을 죽여달라'고 청부했고, 10만 페소(한화 약 250만원)를 청부 대금으로 지급했다.

A씨는 알고 지내던 사설 경호원 두 명을 고용했다. 이들은 같은 달 31일 필리핀을 찾은 허씨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당시 허씨가 묵었던 호텔 주변에서 진행된 행사로 인해 현지 경찰이 배치됐기 때문이다.


암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신씨는 그해 2월, 한 달 만에 다시 A씨에게 살인을 청부했다. 그는 '암살에 성공하면 성공보수금도 주겠다'며 20만 페소(약 500만원)를 지급하기도 했다.

신씨는 한국에 돌아간 허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제대로 관광을 시켜주겠다"며 다시 필리핀을 찾도록 유인했다. 두 번째 암살을 계획했던 2월 17일, 암살 계획은 또 실패했다. 킬러들이 암살 장소에 늦게 도착하면서다.



거듭된 실패에도 신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암살을 시도한 지 하루 만인 2월 18일, 신씨는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허씨를 불러냈고 결국 허씨는 총격을 받고 숨졌다.

경찰, 4년간 끈질긴 조사…증거 제시하자 혐의 인정
2017년 9월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제범죄수사3대에서 열린 '필리핀 킬러 고용, 한국인 청부살해 피의자 검거' 브리핑에서 경찰이 증거품을 공개했다. /사진=뉴스12017년 9월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제범죄수사3대에서 열린 '필리핀 킬러 고용, 한국인 청부살해 피의자 검거' 브리핑에서 경찰이 증거품을 공개했다. /사진=뉴스1
경찰은 허씨에게 거액의 빚을 진 신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조사를 진행했다.



필리핀 앙헬레스로 수사 인력을 파견해 4차례 현장 조사를 벌이는 등 4년간 조사를 이어왔지만 유력 용의자였던 신씨는 범행을 부인했고,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2014년 9월 신씨에게 A씨를 소개하고 살인 청부 통역을 맡았던 C씨가 필리핀 경찰에 자수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경찰은 사건 전말을 모두 알고 있던 C씨의 상세한 진술을 받아냈고, 신씨의 휴대전화에서 신씨가 지인에게 '암살자를 고용해 허씨를 청부 살해했다'고 고백한 통화 음성 파일과 신씨가 A씨에게 건넨 허씨의 사진, 살인 청부 대금을 환전한 내역 등 여러 증거를 확보했다.



신씨는 앞선 9차례 조사에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으나 경찰이 조력자의 진술과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혐의를 인정했다.

"범행 수법 잔인, 엄한 처벌 불가피"…징역 24년 6개월 선고
2018년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김태업)는 신씨에게 징역 2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살인 사건과 별도로 기소된 신씨의 사기 혐의로 징역 6개월이 추가됐다.

당시 재판부는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자 치밀한 계획하게 여러 차례 시도를 거쳐 결국 피해자를 살해하도록 교사했고 범행을 감추려 강도로 위장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며 "피해자가 권총에 6발을 맞고 숨지는 등 수법도 잔인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필리핀에서 필리핀 사람에 의해 범행이 실행돼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컸고, 사건 이후 4년간 유족에게 어떤 사과나 보상도 하지 않았다"며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와의 금전 거래를 하면서 연 30%부터 월 20%에 이르는 고리의 채무를 부담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됐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신씨는 항소했지만 2019년 1월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는 징역 24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생각할 때 장기간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며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징역 24년형은 가벼웠으면 가벼웠지 결코 무겁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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