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지난 5월 서울 영등포구 실종아동찾기협회 사무실. 협회 관계자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꿈에 그리던 가족과 만나는 기적의 순간도 잠시, '날 버린 건가요' 날 선 물음에 끈질지게 '답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형 김윤수씨(46·가명)는 신고한 지 1년 9개월 만에 영등포역 고가도로 아래에서 동생을 만났다. 집에 안 간다는 동생에게 형은 "너에게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사진=최지은 기자
1994년 4월 하나뿐인 딸이 하교 후 사라졌다. 서기원씨(61)는 또 다른 실종을 막기 위해 50여개 법 개정을 끌어냈다. 아버지로서 '못 해준 것'만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사진=이강준 기자
서기원씨(61)는 30년 전 사업가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젊은 아버지였다. 1994년 4월 하나뿐인 10살 딸이 하교 후 사라졌다. 영안실, 윤락가까지 뒤졌지만 딸은 없었다. 원망도 했지만 또 다른 실종을 막기 위해 50여개 법 개정을 끌어냈다. 추석은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볼 예정이다.
자신을 아빠로 부르는 부인과 사는 김화선씨(86)는 7번 넘게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2020년 부인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아내는 "친정아버지가 날 많이 아껴요. 나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 하며 해맑다. 젊은 시절 추억은 오늘날 노부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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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의 1960년대, 8살 된 장남 종석씨는 가족들과 헤어졌다. 삼남매 중 둘째 종순씨는 6살 때 이모가 보낸 부잣집에서 식모살이하다 쫓겨났다. 강서구와 마포구에 살던 남매가 다시 보는 데 61년이 걸렸다. 재회 후 두 번째 추석을 맞지만 막내 종자씨 걱정에 마음이 아프다.
"동생 분 찾았습니다." "동생께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경찰 전화를 받은 형 김윤수씨(46·가명)는 신고한 지 1년 9개월 만에 영등포역 고가도로 아래에서 동생을 만났다. 집에 안 간다는 동생에게 형은 "너에게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수연씨(43)는 19년째 할머니를 찾고 있다. 수연씨에게 할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다. /사진=김지은 기자
자신을 아빠로 부르는 부인과 사는 김화선씨(86)는 벌써 7번째 경찰에 아내 실종 신고를 했다. 치매에 걸린 부인에게 '사랑을 주는 아빠'가 되기로 했다. /사진=최지은 기자
아버지 서기원씨에게 외동딸 희영이는 아무리 자랐어도 자신이 영원히 '책임질 아기'다. 초교 4학년 희영이 시험지에 비가 내려도 진로까지 평생을 뒷바라지할 생각이었다. 희영이가 사라진 지 30년간 또 딸을 위해 실종 관련 협회 일을 한다. 아버지로서 '못 해준 것'만 생각 나 가슴 한 켠이 시리다.
남편 김화선씨는 치매에 걸린 부인에게 '사랑을 주는 아빠'가 되기로 했다. 부인은 어디서든 손을 잡아주는 남편 김씨를 아빠라고 생각한다. 노인복지시설 입소를 제안하는 주변인에 그는 "죽어도 싫다"며 "부인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고 한다. 아내는 수줍게 웃는다.
오빠 종석씨와 동생 종순씨에게 가족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헤어진 지 61년간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짙어졌다. 동생 종순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손자까지 봤지만 마음 한켠에 늘 오빠와 여동생이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윤수씨는 2살 터울 남동생 연수씨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형제의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해외에 거처를 마련해 함께 살지 않았다. 윤수씨는 결혼 후에도 동생과 함께 살았다. 늘 '동생이 먼저'였다. 그가 밝힌 이유는 간단했다. "가족이니까요."
먹고 살기 바빴던 우리의 1960년대, 8살 된 장남 종석씨는 가족들과 헤어졌다. 오빠 종석씨와 동생 종순씨에게 가족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헤어진 지 61년만에 이들은 재회했다. /사진=최지은 기자
/그래픽=윤선정 디자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