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값 이미 반토막…1000만원에 사는 자동차의 등장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박미리 기자 2024.09.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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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리튬 패러독스(下)

편집자주 전기차 시대를 이끄는 '하얀 석유', 리튬 가격이 추락한다. 리튬 가격이 뛰어야 돈을 버는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의 실적도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과 맞물려 추락한다. 하지만 리튬값이 여기서 반등하면 전기차 대중화의 필수조건인 전기차 가격 하락도 지연돼 캐즘 기간만 늘어난다. 이제 리튬 가치가 더 내려가야 역설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산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리튬 패러독스'를 견뎌야 할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니켈, 코발트도 추락…전기차 1대 원자재 값 '반토막'
니켈, 코발트 가격 추이/그래픽=윤선정니켈, 코발트 가격 추이/그래픽=윤선정


가격이 떨어지는 광물은 리튬 뿐만이 아니다. 니켈과 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의 또 다른 주요 광물가격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1대를 만들 때 사용하는 평균 원자재 비용은 이미 반토막이 났고 2000만원대 전기차 모델이 하나 둘 출시된다.

9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이달 니켈 가격은 톤당 1만6132달러로 2022년 고점 보다 37% 떨어진 상태다. 코발트 가격 역시 같은 기간 62.2% 내려갔다. 두 광물의 가치도 리튬과 비슷한 추세로 하락하는 셈이다. 배터리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양극재는 리튬을 다양한 광물로 구성된 '전구체'와 결합해 제조되는데, 전구체는 양극재 원가의 60% 비중이다. 니켈과 코발트는 이 같은 전구체의 전체 구성 성분 중 90% 안팎이어서 리튬과 마찬가지로 양극재는 물론, 배터리와 전기차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니켈과 코발트의 최근 가격 하락은 리튬 가격 폭락과 맞물려 전기차 가격 하락을 이끌어낼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컨설팅기업 아다마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기차 1대를 만들 때 사용하는 평균 원자재 비용은 올 상반기 65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1674달러) 대비 절반 이상 줄었다.

리튬 등 전기차 주요 광물 공급망을 틀어쥔 중국은 이미 1000만원대 전기차를 내놓기 시작한다. 상하이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사 울링이 출시한 빙고EV의 가격은 약 1070만원으로 책정됐다. BYD는 약 1300만원 전기차 모델을 내놨고 지리 자동차는 약 1500만원에 새 전기차 모델 지오미 싱위안 EV을 출시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첫 2000만원대 전기차가 나왔다. 현대차의 캐스퍼 일렉트릭은 친환경차 세제혜택 적용 기준 2990만원이다. 국고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적용받으면 2300만원대에 살 수 있다. 가솔린 모델인 캐스퍼 인스퍼레이션과의 가격차는 500만원 이하다. 여기서 리튬과 니켈, 코발트 가격이 더 내려가면 세제혜택과 보조금 없이도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이 동일해 지는 시점이 오게 되는 셈이다.

전기차 판가 하락 추세가 미국의 금리 인하와 맞물릴 경우 캐즘이 완화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부터 자동차 할부 금리가 하락하며 전기차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김경훈 SK온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지난달 콘퍼런스콜에서 "하반기에는 신차 라인업 확대, 금리 인하, 하락한 메탈 가격을 기반으로 상반기 대비 전기차 및 배터리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원계(NCM·NCA)에 비해 성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저렴한 중저가 배터리의 보급 확대는 전기차 가격을 더욱 끌어내릴 수 있는 요인이다.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경우 kWh당 90달러대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내연기관 수준의 가격 경쟁력(kWh당 100달러)을 이미 갖춘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르노에 2025년부터 2030년까지 총 5년간 39GWh 규모의 LFP 배터리를 공급키로 했다. 순수 전기차 약 59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망간리치 등 중저가 라인 역시 개발 단계다. SK온은 LFP 배터리를 2026년 양산할 계획이다. 코발트 프리 제품의 경우 2025년 이후 상용화가 거론된다. 삼성SDI는 니켈망간계(NMX)배터리 등으로 중저가 시장을 공략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캐즘 탈출의 열쇠는 결국 '가격'이 쥐고 있다"며 "2000~3000만원대 전기차들이 시장에 본격 쏟아질 경우 '얼리어답터'를 넘어선 전기차 구매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 싸고 흔하고 안전해…리튬 뺀 전기차 배터리 시동
원자재 값 이미 반토막…1000만원에 사는 자동차의 등장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서는 최근 '탈 리튬'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전기차 배터리 밸류체인 내 리튬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리튬 대신 나트륨 등을 사용하는 배터리는 개발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다.

리튬은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만드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한다. 니켈·코발트·망간 등 광물을 섞어 만든 전구체에 리튬을 더하면 양극재가 된다.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음극재가 저장했다가 방출하는 방식으로 전류를 흐르게끔 한 게 리튬이온배터리다. 현재 이차전지의 대부분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리튬의 경우 이차전지의 중요성이 커지며 수요가 폭증했다. 하지만 자원이 미국, 중국,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등에 한정돼 있어 가격 변동성도 크다. 최근 전기차 캐즘과 맞물려 가격이 급격히 떨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이 전세계 리튬 제련의 65% 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저렴한 인건비, 느슨한 환경 규제 등을 앞세워 배터리 밸류체인의 한 축을 중국이 장악한 것이다. 리튬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숙제일 수 밖에 없다.



'탈 중국' 리튬의 확보가 배터리 업계의 화두가 된 가운데, 아예 '탈 리튬'을 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나트륨이온배터리(SIB)가 대표적이다. 리튬 보다 구하기 쉬운 나트륨을 주원료로 쓰는 배터리다. 전기화학적 안정성이 높고, 저온에서의 성능 저하가 심하지 않다는 이점이 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화재 문제가 불거진 후 더욱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저가 배터리인 LFP(리튬·인산·철) 보다도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는 점은 약점이다.

CATL 등 중국 기업들이 나트륨배터리 기술 확보의 선두에 서 있지만, 국내 기업들 역시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른다. 에코프로비엠은 오창 사업장에 국내 최대 규모의 나트륨배터리 양극재 전용 파일럿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애경케미칼은 나트륨 배터리용 음극재 주소재로 사용되는 고성능 하드카본 개발에 성공했다.

이동욱 에코프로비엠 미래기술담당 이사는 "리튬이 현재 수요 둔화로 가격이 낮은 추세지만 가격은 언제든 상승할 수 있다"며 "가격이 싸고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한 나트륨으로의 대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NE리서치는 나트륨배터리의 시장 규모가 2035년 19조원 대에 달할 것이라 내다보며 "LFP 배터리 대비 최소 11%, 최대 24% 저렴하게 생산될 전망"이라고 했다.



마그네슘이온배터리와 아연공기배터리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모두 리튬 대비 더 풍부하고 값싼 자원이라는 특징이 있다. 아직 기술개발 초기 단계이고, 성능 저하나 떨어지는 안정성 등의 단점을 극복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당장 리튬이온배터리 위주의 시장을 뒤집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대안 배터리 기술 검토 역시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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