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생명의 산소 운반책' 적혈구

머니투데이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2024.08.23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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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피 한 방울에 적혈구(赤血球, 붉은피톨)는 과연 몇 개나 들었을까. 물경 3억개가 들었단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피 1㎣에 남성은 적혈구가 540만개, 여성은 약 480만개가 들었는데 이런 차이는 남성의 활동이 여성보다 많은 탓이다. 그리고 사람의 몸에 들어있는 피가 약 5리터라 전체 적혈구는 약 25조개다. 1초에 파괴되는 적혈구가 약 300만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파괴된 만큼 새로운 적혈구가 만들어진다. 어쨌거나 모든 세포에 맑은 '생명의 산소'를 운반해주는 것이 적혈구다.

사람의 적혈구는 지름이 7~8㎛(micrometer·1㎛는 1000분의1㎜)로 모세혈관을 겨우 빠져나갈 정도고 모든 포유류의 적혈구가 그렇듯이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도넛(doughnut) 꼴을 한다. 적혈구가 골수(骨髓)에서 만들어질 때는 핵(核)이 있었으나 세포가 성숙하면서 핵을 잃어버리고 대신 그 자리에 헤모글로빈(hemoglobin)이 들어찬다. 그래서 적혈구는 핵(DNA)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토콘드리아도 없는 특이한 세포다.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운반하는 중요한 단백질인데 결국 핵이 없어진 자리에 이것이 들어찬 것은 유리한 적응이다. 또한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한다지만 미토콘드리아가 없어서 그 산소를 쓰지 않아 헌혈할 피를 35일 동안이나 보관할 수 있다.

심장을 떠난 피가 온몸에 산소를 전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약 23초가 걸린다. 그래서 적혈구 한 톨이 평생 144㎞를 돌아다닌 셈이요, 몸에 있는 전체 적혈구를 이어 줄을 세워보면 그 길이가 무려 17만㎞며 총면적은 3200㎢에 달한다. 적혈구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적혈구가 많아야 조직에 산소를 넉넉히 공급할 수 있고 선수들이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적응훈련을 하는 것은 바로 적혈구 수를 늘리는 일이다. 최근 국내 마라톤대회에서 선두를 달린 선수는 거의 고도가 높은 곳인 케냐나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출신이 아니든가. 그만큼 그들은 적혈구가 많아 산소 공급능력이 뛰어났다. 운동선수들의 지구력은 결국 산소를 얼마나 조직에 잘 공급하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이 시합 전에 간혹 '적혈구 주사'를 맞기도 했다는데 그러면 도핑검사(doping test)에 걸리고 만다.

그런데 피는 왜 붉을까. 적혈구(Red Blood Cell, R.B.C)는 '붉은 피톨' 또는 '붉은 세포'라고 부르는데 적혈구에 든 색소단백질인 헤모글로빈엔 헴(heme)과 철(Fe) 원소가 들어 있어 여러 산소 분자를 달라 붙인다. 한 사람의 몸엔 4g 정도의 철분이 있는데 이 중 60%는 헤모글로빈에 들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피가 붉은 것은 헴의 철분이 산화된 붉은 산화철(酸化鐵, iron oxide) 때문이다. 동물의 헤모글로빈에는 산소가 붙었다(포화, 飽和) 떨어졌다(해리, 解離)를 거듭하지만 쇠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늙음은 한 마디로 일종의 녹슮이다.

적혈구가 하는 일은 산소 운반에 있다고 했다. 산소는 물에 녹으므로 피에도 녹아들 수 있다지만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은 물보다 60~65배 더 많이(쉽게) 산소와 결합할 수 있고 세포에서 대사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도 운반한다. 또 그것은 산소보다 일산화탄소와 결합하는 힘이 250배나 더 강하다. 따라서 일산화탄소가 적혈구에 쉽게 달라붙어버려 산소가 부족하게 되니 그것이 연탄가스 중독이요 도시가스 중독이다.


적혈구는 큰 뼈다귀인 두개골, 척추, 늑골, 골반, 팔다리뼈 따위에서 만들어지고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120일간 운반하고 나면 간과 지라에서 죽어 파괴되고 만다. 싱싱하고 새빨갛던 적혈구도 죽어서 똥오줌을 누렇게 물들이는 싯누런 빌리루빈(bilirubin)으로 바뀐다. 또 빌리루빈이 창자로 흘러들지 못하거나 콩팥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으면 무서운 황달(黃疸)이 된다.(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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