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서 만난 반가운 초록병?…한글 이름 '짝퉁 소주'에 속았다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24.08.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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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태국의 한 주점에서 판매중인 태국산 소주 '건배'/사진=독자제공올 초 태국의 한 주점에서 판매중인 태국산 소주 '건배'/사진=독자제공


"어? 이슬이 아니네?"

최근 태국을 여행한 직장인 A씨는 현지 마트에서 '초록색 병'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제품을 확인했다가 궁금증이 생겼다.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명이었기 때문이다. 한글로 '건배'(Geon-Bae)라고 쓰인 이 제품의 후면에는 '타이 스피릿'이란 회사에서 생산하는 과실주로 표기돼 있었다.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서 K콘텐츠를 접한 외국인이 K푸드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나자 이를 이용한 미투 제품도 활개를 치고 있다. 오리지널 브랜드의 감시가 소홀한 점을 이용해 K푸드 인기에 편승하려는 전략이다. 국내 기업들은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제품력을 확인시켜 줄 기회라는 판단에 따라 대응하지 않고 있다.



실제 동남아시아에선 보드카보다 부드럽고 맥주보다 쏘는 맛이 강한 한국산 과일소주 인기가 많다. 하이트진로의 '~에 이슬' 시리즈나 롯데칠성음료의 '순하리'가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다.

현지에서 소주가 주류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자 미투 제품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에는 '건배', '태양', '선물'같은 한국명 현지 소주가 마트마다 구비돼 있고, 싱가포르 '초롱초롱', 인도네시아 '참좋은', 필리핀 '행복한 소주' 등 주변국에도 미투 제품이 생겨났다. 이들은 한병에 4500~5000원 판매하는 국내 소주보다 약 20~40% 저렴한 가격으로 오리지널 제품과 경쟁 중이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만 '유사소주'로 불리는 미투 제품은 27개 브랜드에 170여종이 있다.

동남아시아 현지기업이 판매하는 유사소주 사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건배(태국), 자몽 행복한(필리핀), 초롱초롱(싱가포르), wija(인도네시아), 찾을수록(말레이시아), 빙고(캄보디아)./사진=업계 취합동남아시아 현지기업이 판매하는 유사소주 사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건배(태국), 자몽 행복한(필리핀), 초롱초롱(싱가포르), wija(인도네시아), 찾을수록(말레이시아), 빙고(캄보디아)./사진=업계 취합
매운맛 열풍을 몰고 온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수년간 카피 제품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식품사들이 코로나19 이전부터 캐릭터까지 베낀 제품을 출시해 논란이 됐고, 지난해엔 라면 1위 기업 닛신이 까르보불닭을 연상시킨 제품을 출시해 비난받았다. 특히 중국 제품들은 모방이나 미투가 아닌 저작권까지 훔친 제품이라는 판단에 따라 IP(저작권) 침해 소송까지 진행 중인데 1심에서 승소하고 2심을 진행 중이다.

국내 기업이 만드는 해외전용 '불닭볶음면' 미투 상품도 등장했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 팔리는 '불라멘(Bul ramen)은 포장부터 불닭볶음면과 유사한 미투 제품으로 미국 벤더사의 요청에 따라 하림이 위탁생산하는 해외전용 라면이다. 불닭볶음면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틈을 파고들어 시장을 넓히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오리지널 제품을 만드는 국내 기업들은 미투 제품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해외에 있는 미투 제품의 영향력이 아직 미미한데다 규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 침해같은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카피 제품의 소송을 통해 진품 홍보 효과나 배상금 지급 선례를 남길 순 있지만 매출을 증대시키는 효과는 없다"며 "게다가 미투 제품은 마땅히 대응할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도 "미투 제품이 늘어나면서 오리지널 제품의 품질 경쟁력과 현지 마케팅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소비자가 제품을 보고 구분할 수 있도록 포장을 변화시키고 주기적인 디자인 리뉴얼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초 괌의 한 식품점 매대에 국산 브랜드와 함께 진열된 불라멘(Bul ramen)(왼쪽 하단)/사진=독자제공 올 초 괌의 한 식품점 매대에 국산 브랜드와 함께 진열된 불라멘(Bul ramen)(왼쪽 하단)/사진=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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