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이전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한국 최초 연쇄 살인범 김대두. /사진=한국심리과학센터
괴한은 이후 두 달 동안 16명을 더 살해하고 경찰에 체포됐다. 55일간 살해한 사람 17명, 유영철 이전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했던 한국 최초 연쇄 살인범 김대두의 이야기다.
/사진=JTBC '사건반장'
출소 이후 공장을 전전했지만, 전과자로 낙인찍히면서 사회에 대한 증오와 불만이 점점 커졌다. 결국 광산군 외딴집에서 첫 범행을 한 그는 전국을 돌며 9차례나 살인을 더 저질렀다.
김대두는 첫 범행 6일 만인 8월19일 기차에서 우연히 같은 교도소에 복역했던 재소자 A씨를 만났다. 그는 A씨와 함께 전남 무안군에 있는 한 구멍가게를 습격해 노부부와 7살 손자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이곳에서 빼앗은 것은 단돈 250원과 빵, 음료수, 과자. 둘은 "이왕 죄를 지을 바에 돈이 많은 서울에서 하자"며 다시 기차에 올랐으나, 얼마 못 가 헤어졌다.
단돈 2만6800원 때문에 17명 죽였다
김대두의 모습/사진=JTBC '사건반장'
김대두는 혼자 칼과 망치, 돌 등으로 강도 살인 및 성폭행을 이어나갔다. 그해 9월7일 서울 동대문구 면목동(현 중랑구 면목동)에서 혼자 사는 60대 남성을 살해했으며, 보름 만인 25일엔 경기 평택군(현 평택시)에서 70대 노인과 그의 딸(40), 손주 셋(5살, 7살, 11살)을 차례로 살해했다. 11살 손녀는 나무에 묶어 성폭행하기도 했다.
4명의 피해자 모두 망치로 살해당했는데, 얼굴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이후에도 김대두는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며 8명을 더 살해했다. 생후 3개월 된 아기의 생명도 무참히 짓밟았다.
김대두는 범행 두달 만인 10월7일 피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세탁소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다.
김대두가 9차례 강도 살인을 저지르면서 빼앗은 돈은 2만6800원에 불과했다. 1975년 당시 쌀 한 가마니가 1만 8600원쯤 했으니, 지금 돈으로 치면 겨우 몇십만원을 빼앗기 위해 17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남산 위에서 보이는 불빛들…내 것은 하나도 없어"
김대두에 대한 신문 보도 캡처/사진=유튜브 채널 김복준의 사건의뢰 갈무리
김대두는 또 당시 취재진에게 "남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불빛은 많은데 내 것은 하나도 없었다"며 범행 책임을 사회로 떠넘기기도 했다.
김대두의 변호인도 마지막 변론에서 "피고인은 집단에 대한 귀속의식이 충족되지 못했다. 사형제도 폐지론의 조류에 따라 실증적인 하나의 연구로서 피고인에게 무기 징역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김대두는 1심과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에야 참회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된 그는 형장에서 "지은 죄를 깊이 뉘우친다. 전과자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시정됐으면 한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