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찰이냐 불가피한 수사냐…미국 사례 보니[조준영의 검찰聽]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4.08.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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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불이 꺼지지 않는 검찰청의 24시.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사에 담을 수 없었던 얘기를 기록합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통화내역이 아닌 가입자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데 꼭 영장이 필요할까. 영장주의가 도입되면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고 수사에 차질은 없을까.

야당 의원과 언론인을 상대로 한 검찰의 통신이용자정보 무더기 조회가 던지는 질문들이다. 사찰이냐 아니냐는 질문을 넘어 짚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통신수사는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해 수사기관이 취득한 번호의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가입일·해지일 등을 통신사로부터 제공받는 통신이용자정보와 당사자가 누구와 언제 어디에서 통화했는지 등 구체적인 통신기록이 담긴 통신사실확인자료, 감청으로 알려진 통신제한조치, 이메일과 메시지 내용 등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구분된다.

통신수사 종류/그래픽=최헌정통신수사 종류/그래픽=최헌정
이 중 통신이용자정보는 현행법에서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수사기관이 조회할 수 있는 자료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그동안 판례를 통해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통신이용자정보를 요청하는 것은 강제력이 개입되지 않은 임의수사에 해당돼 영장 없이도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에서도 영장 없이 수사기관이 통신이용자정보를 제공받는다. 미국에서는 연방 형사절차에 따라 영장을 발부받아 가입자정보를 확인하기도 하지만 실무상 검사가 직접 소환장을 발부해 영장 없이 통신정보를 조회한다.

다만 국내에서 수사기관이 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하면 반드시 조회사실을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헌재는 2022년 수사기관의 통신이용자정보 조회와 관련해 사후통지절차를 두지 않은 것은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해외 입법례/그래픽=최헌정통신이용자정보 조회, 해외 입법례/그래픽=최헌정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의 통신이용자정보 조회는 초동 수사 단계에서 이뤄진다. 통신이용자정보를 통해 확보한 인적사항을 토대로 범죄 연관성을 확인해 수사대상자를 특정하거나 범위를 좁히는 단계다.


수사기관이 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할 때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할 경우 기존 압수수색 영장처럼 경찰은 검찰로, 검찰은 다시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는데 짧게는 이틀, 길게는 사흘이 걸린다. 검찰과 경찰을 가리지 않고 "성폭력, 보이스피싱 등 초기 대응이 중요한 범죄는 수사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다만 수사기관이 법원 영장 없이 통신정보를 확보했다가 별건 수사 증거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검찰과 경찰 모두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검에 따르면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을 통해 통신사로부터 받은 통신이용자정보는 시스템에서 30일 후 자동 삭제된다. 범죄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된 통신이용자정보는 법원의 영장으로 확보한 통신사실확인자료와 함께 별도 검찰 내부 분석시스템에 등록돼 통화내역을 분석하는 용도로 활용되지만 이때도 원칙적으로 9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된다.

검찰 관계자는 "'디지털 캐비닛' 우려는 과한 걱정"이라며 "별도로 보관해 다른 목적으로 활용할 이유도, 오남용한 사례도 없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통신조회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법원의 사전허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법원은 원칙적으로 공감하지만 당장은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대검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통신사가 수사기관에 제공한 통신정보는 전화번호 수 기준 매년 평균 700만건에 달한다.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 건수가 50만건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인력으로는 통신정보조회 영장발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통신이용자정보자료 제공 10년 추이/그래픽=최헌정통신이용자정보자료 제공 10년 추이/그래픽=최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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