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물론 근대 올림픽은 민족주의를 벗어나 세계의 젊은이가 스포츠를 통해 우의를 다지고 신체와 정신의 자질을 키우며 국제 친선을 도모한다는 이념을 내세웠다. 그러나 국가-선수단-선수-우승-수상이라는 구조는 국가-군대-군인-승리-보상이라는 구조를 빼닮았다. 올림픽은 국가 사이에 전쟁을 치르지 말고 스포츠경기로 이를 대신하자고 외친다.
올림픽은 전쟁의 대체재다. 전쟁과 유사한 '놀이'를 통해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러나 올림픽은 전쟁의 재현이지만 곧 전쟁 자체는 아니므로 유사성을 숨기기 위해 여러 담론으로 분칠된다.
개인의 성취담론도 힘이 세다. 우승을 이뤄낸 선수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언론은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쥐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취를 이뤄냈는지 홍보한다. 누구든 환경 탓하지 말고 개인이 열심히 도전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메달을 놓친 선수는 실패한 셈이 된다.
산업주의 담론도 만만치 않다. 올림픽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산업이 빛을 발한다. 올림픽경기장은 글로벌 기업의 홍보와 광고마당으로 탈바꿈한다. 거액의 방송중계 수수료는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살찌우는 양분이 된다. 스포츠는 산업이 되고 산업은 스포츠를 지원한다. 비판적으로 보면 이는 결국 자본의 논리가 스포츠를 장악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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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개인, 산업을 뛰어넘는 문화주의 담론도 있다. 올림픽이야말로 개최지의 문화적 역량을 통해 세계 문화가 한자리에 모여 축제를 펼치는 장이라는 생각이다. 문화는 순수한 이름으로 올림픽에 불려나온다. 그러나 그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개막식과 폐막식의 퍼포먼스도 깊이 따지고 들면 국가주의나 산업주의와 깊이 연결돼 있다.
파리올림픽은 개막식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북한으로 잘못 호명하고 펜싱선수 오상욱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고 태극기만 유독 흐릿한 사진을 홍보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모두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올림픽이 근대 국가의 완성을 위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더욱 유감스럽다. 파리올림픽이 이제라도 메달은 놓쳤지만 잘 싸운 선수들, 순위에 들지 않았지만 큰 힘을 낸 나라들, 자본을 쏟아붓지 못하지만 여전히 스포츠를 사랑하는 기업들, 국가주의에 물들지 않은 문화와 예술의 축제가 되길 희망한다.(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