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꺾인 물가, 꽁꽁 닫힌 지갑…금리인하 '청신호'는 켜졌다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세종=박광범 기자, 유재희 기자 2024.07.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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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금리인하 골든타임 (上)

편집자주 물가 둔화세가 뚜렷해졌는데 내수 회복은 요원하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낙관 전망을 내보였지만 국민들에게 체감될 정도의 경기 회복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통화정책이 시차를 두고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금리인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가와 경제성장, 환율, 가계부채 우려 등 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본다.

18개월 만 한국 경제 뒷걸음질…"내수 심상찮아" 힘 받는 금리인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뉴스1


지난 2분기 한국 경제가 역성장했다. 1년 6개월만이다. 무엇보다 소비와 투자 등 내수 부진이 심상찮다. 경기 진작을 위한 선제적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여건도 충분하다. 물가는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시장 금리는 이미 금리 인하를 반영하고 있다. 글로벌 국가의 움직임도 금리 안하 쪽이다. 물론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 등은 통화당국의 고민을 깊게 하는 요인들이다.

28일 머니투데이가 채권시장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7명이 8월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물가 상승률이 둔화됐고 민간 소비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 수출 호조도 IT(정보기술)와 자동차 등 일부 업종에 한정돼있다는 점에서 선제적인 금리인하의 당위성은 커졌다고 평가했다.



우혜영 LS증권 연구원은 "금리를 내린다고 바로 실물 경제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시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수 회복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선제적 인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율이나 가계부채 문제로 금리를 내리지 않고 유지하면 내수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고용 증가폭이 둔화됐고 자영업자 연체율도 오르면서 금리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물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금리인하를 위한 상황은 연출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물가는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2.4%까지 내려왔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년4개월 만에 2%대로 진입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물가만 보면 금리인하를 논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그래픽=최헌정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그래픽=최헌정
시장에도 정책금리 인하 기대감이 이미 만연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시장의 과도한 금리인하 기대를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당시와 비교해서도 시장금리는 더 내려간 상황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26일 3.024%를 기록했다. 통방회의가 있었던 지난 11일(3.163%)보다 14bp(1bp=0.01%포인트) 낮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채권시장은 이미 금리인하를 선반영했고 경기나 물가 여건을 봤을 때 금리인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수도권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움직임은 금리인하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제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가계부채 증가는 장기적으로 경제에 문제가 될 수 있고 외환시장 불안도 고려한다면 연준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긴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음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는 다음달 22일이다. 그 이후 올해 금통위 통방회의는 10월과 11월 두 차례 남는다.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게 되면 10월까지는 현재 기준금리(연 3.5%) 수준이 유지된다.

금리인하 필요성과 별개로 응답자 중 8명은 다음달 금통위에서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이 2분기 역성장에도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바꾸지 않았고 하반기 내수 회복에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 GDP(국내총생산)가 시장과 한은의 기대치를 모두 하회했기 때문에 금리인하 압박이 커지는 상황은 맞다"면서도 "한은이 하반기 내수 회복에는 낙관 전망을 보이고 있고 가계부채 같은 불안요인이 있어 곧바로 금리를 내리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10인의 한국은행 8월 기준금리 결정 전망/그래픽=최헌정전문가 10인의 한국은행 8월 기준금리 결정 전망/그래픽=최헌정
기대인플레션율도 2%대로…기준금리 내릴 준비 마친 물가
소비자물가지수 추이/그래픽=이지혜소비자물가지수 추이/그래픽=이지혜
최근 물가 상승세 둔화는 지표뿐 아니라 심리에서도 확인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 달 연속 2%대를 기록한 데 이어 소비자들이 전망하는 향후 물가 수준도 2년 4개월만에 2%대로 떨어졌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결정의 핵심 요소인 '물가 안정세'가 확연해지면서 금리인하 기대가 커진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기대인플레이션율은 2.9%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경제주체들의 1년 후 물가 상승률 전망을 나타낸다. 기대인플레션율이 2%대로 내린 건 2022년 3월(2.9%) 이후 2년 4개월 만이다.

한은은 물가 수준을 판단할 때 단순히 소비자물가 상승률뿐 아니라 기대인플레이션율에도 신경쓴다. 향후 물가에 대한 소비자 기대 심리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기대인플레이션을 2%대로 안정시키고 싶은데 물가가 오르는 것뿐 아니라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변하고 있느냐를 주요하게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물가 지표 안정세는 이미 뚜렷하다.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8%로 정점을 찍은 이후 점차 내려 지난달 2.4%까지 낮아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개월 연속 2%대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은 2.2%를 나타냈다.



집중호우에 따른 일부 농산물 수급 차질과 국제유가 변동성 등으로 7월 물가가 반등할 가능성이 크지만 정부와 한은은 '일시적 반등'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만 놓고 보면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때가 됐단 분석이 우세하다. 한은 내부에서도 길었던 '물가와의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물가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저희가 많은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물가 안정만을 갖고 본다면 이제는 금리 인하를 논의할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밝혔다.



금통위 내부에서도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달 포워드 가이던스를 통해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언급한 금통위원이 2명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5월 금통위 땐 1명만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들이 금리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이유 역시 물가였다. 한은법 제1조에서 규정한 한은의 최우선 책무(맨데이트)인 '물가 안정'에 대한 확신이 커진 만큼 금리인하를 진지하게 검토할 환경이 조성됐다는 주장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물가가 안정되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 기본 전제"라며 "(물가가 안정되더라도) 경기 여건이 너무 좋으면 금리를 못내리는데 그냥 좋은 수준이라고 하면 금리인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GDP 쇼크, 소비 마이너스 …"하반기 내수도 어려워"
(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세법개정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2024.7.2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세법개정안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2024.7.2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세종=뉴스1) 김기남 기자
2분기 소비가 마이너스(-)를 그은 데 이어 하반기에도 뚜렷한 내수 회복세를 기대하긴 힘들단 전망이 우세하다. 고금리 속 소비 위축을 고려하면 통화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국내총생산(GDP)는 0.2% 감소해 당초 예상치를 밑돌았다. 분기별 GDP가 뒷걸음친 건 2022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1분기 깜짝 성장(1.3%)에 따른 기저 효과를 무시할 수 없지만 건설투자(-1.1%)·설비투자(-2.1%) 등 '내수 부진'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민간소비만 보면 0.2% 줄었다. 지난해 2분기 이후 1년 만에 감소세다. 정부 소비가 0.7% 증가한 것과 온도 차가 크다. 정부는 올 하반기 완만한 내수 회복세를 전망한다. 수출 호조에 따른 소비 반등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장밋빛 기대에 그칠 수 있다. 전망부터 기관별로 엇갈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못하면서 경기 개선세가 미약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세부 지표도 좋지 않다. 5월 소매판매는 1년 전보다 3.1% 감소했다. 전월(-2.2%)보다 감소폭을 키웠다. 전월 대비 소매판매는 △3월 1.1% △4월 -0.8% △5월 -0.2% 등으로 일관되지 않게 등락했다.

시장에서도 내수에 대한 비관론이 짙다. 향후 소비 여건을 뒷받침할 수출 호조의 지속성을 장담하기 어렵단 지적이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내수가 회복단계에 진입했다고 확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하반기 수출이 지금보다 더 좋아지기는 어려운 것을 감안할 때 수출의 (경기회복) 기여도는 조금씩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출 증가는 시차 두고 내수에 긍정적 영향을 주긴 하지만 지금의 수출 회복이 모두에게 고른 것이 아니고 자동차·반도체 업종에 쏠려 있단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기업들의 경기전망도 비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8월 BSI 전망치는 97.1을 기록했다. 기준치인 100보다 낮으면 부정 응답이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BSI 전망치는 지난 2022년 4월 이후 29개월 연속 기준치를 밑돌았다. 제조업 심리가 일부 개선에도 고금리 장기화 등 내수 위축 우려가 겹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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