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자동차 안의 '기울어진 운동장'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4.07.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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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은 물론, 유럽이나 북미의 완성차 업체에도 중국인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지난주 만난 한 디스플레이 기업 차량사업부의 고위 임원은 최근 주요 고객사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의 만남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는 우리 기업에 버금가는 차량용 디스플레이 라인업을 구축한 뒤, 30~40% 낮은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점유율을 차츰 늘려가고 있다. 이 임원은 1~2년의 기술 격차가 벌어진 지금은 몰라도, 몇 년 후에는 고객사를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디스플레이 굴기'를 외치는 중국의 공격이 차량용 디스플레이에 집중되고 있다. 낮은 수율과 성능, 발열·내구도 문제로 차량용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을 깨고 글로벌 완성차업체도 BOE, 스카이워스 등 중국산 패널을 사용하는 경우가 느는 추세다. 시장의 절반을 중국이 이미 가져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뒷배경은 중국 정부다. 낮은 가격과 높은 불량품 비율로 생기는 손실을 막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메운다. BOE가 지난해 8.6세대 OLED 공장을 지을 때 투입된 11조원의 돈 중 60% 이상이 보조금과 정부의 저리 융자다. 올해는 판매 단계까지 보조금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가격에 민감한 수주형 사업인 차량용 디스플레이 공략에는 효과적이다.

중국보다 투자 지원이 적은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차량용 디스플레이는 성장이 주춤해진 IT용 패널과 다르게, 연간 35%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되는 미래먹거리다. 정부를 등에 업은 중국 기업을 막지 못한다면 시장 주도권을 지키기 어렵다.



앞서 있을 때 더 경쟁력을 강화해야 제2의 'LCD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정부도 기업이 잘 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줘야 한다. 올해 첨단 디스플레이 연구개발을 돕기 위해 903억원을 투입하기로 한 점은 반갑지만, BOE 한 곳이 지난해 받은 보조금 7200억원에 턱 없이 못 미치는 액수다. 지원안이 세제 혜택과 금융지원에 치우쳐 있는 점도 아쉽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의 "중국과 한국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말은 그냥 해 보는 푸념이 아니다. 디스플레이는 이미 국가 대항전이 됐다. 디스플레이 강국의 위상이 차 안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기업의 투자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오진영 기자수첩 /사진=오진영오진영 기자수첩 /사진=오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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