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 한 사육곰 농장의 마지막 곰이었던 '주영이'. 사육곰이라 불리지만 멸종 위기인 '반달가슴곰'. 몸보신을 위해 길러지고, 10살이 되면 도살돼 웅담이 빼내어질 운명을 가지고 살았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 구조해 생이 다할 때까지 살아갈 수 있게 됐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어미도 친구들도 그리 다 죽었다. 주영이 홀로 남았다. 주영이가 열 살이 되던 해, 웅담을 사고 싶단 이가 나타났다. 농장 주인은 팔지 않았다. 마지막 곰만큼은 살리고 싶었단다.
10년 넘게 갇혀 사는 단조로운 삶으로, 정형행동을 보이던 주영이./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빨간색 어구에서 사료를 빼먹는 주영이. 활동가들은 곰들이 가진 본능과 행동 욕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삶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한다. 먹이를 찾아 먹는 야생의 습성을 채워주기 위한 노력이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생수통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애쓰는 주영이. 본래의 습성을 깨닫고 지루함을 달래게 해주는 일. 그걸 고민하는 이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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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래 갇혀 살았기에, 활짝 열린 문 앞에서도 나가길 주저하는 것일지. 그런 게 아프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주영이도 용기를 내었다. 흙의 촉감을 처음 느끼고 싱그런 풀 내음을 맡으며 숨겨둔 먹이를 냠냠 먹었다. 그리 한참 동안 곰숲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짙은 풀내음을 맡고 흙의 감촉을 천천히 느끼는 주영이. 친구 우투리가 도와주었다. 용기를 낼 수 있도록./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비좁은 뜬장서 갇혀 살다…10살부터 웅담 채취
뜬장에 갇혀 사는 한 사육곰 농장의 곰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흙과 나무에 코를 박고 먹을거리를 찾는 걸, 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뜯고 씹는 걸, 물에 몸을 담그며 휴식을 취하는 걸 좋아한다고.
그런 존재를, 좁게는 1평 남짓한 철창에 가둬왔다. 본능에 따를 기회를 철저히 뺏었다. 1981년부터 웅담이 '값비싼 약재'라며 사육된 게 시작이었다. 당시 웅담 가격이 2000~3000만원씩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호스를 꽂아, 즙을 빼 먹는 잔혹한 기술까지 나왔다.
바깥에 단 한 번 나가본 적 없어도, 본능적으로 그쪽을 바라본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농장 조사 및 시민 인식 조사 보고서'에서 "국가가 동물 학대 방법을 안내한 게 아닌가. 이보다 넓은 면적에서 기르던 사람들에게 '우리를 더 좁게 만들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 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수년간 전국 사육곰 농장을 조사했다. 농장 대다수는 사육곰을 '뜬장(바닥에서 떠 있는 철창)'에 넣어뒀다. 면적이 좁고, 바닥이 불안정해 정상적으로 걸을 기회가 적다. 나이 든 사육곰 대다수가 '척추증'으로 고통받는 걸 감안할 때, 사육장 형태가 수명에도 영향을 주는 걸로 보인다고 했다.
앞다리 둘, 뒷다리 하나가 잘려나가 뒷다리 하나만 남은 사육곰. 주로 옆 칸의 곰이 물어 뜯어 생기는 경우였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척추증으로 인해 뒷발을 끌고 다니는 농장의 사육곰. 발가락 패드가 다 쓸려 나갔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고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형행동을 보이는 사육곰.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지표다./사진=남형도 기자
2026년부터 사육곰 산업 '불법'…남겨진 곰 100마리 '무대책'
철창 안에서 빙글빙글 도는 정형행동을 하는 사육곰./사진=남형도 기자
그럼 어렵게 살아남은 사육곰들은 어쩌나. 올해 3월 기준, 전국 18개 농장에 280마리가 남아 있다. 남은 곰 중 267마리는 2010년 이전에 태어났다. 가장 어린 곰도 2015년생이다. 최소 10년 넘게 갇혀 있게 되는 셈이다.
사육곰 280마리 중 120~130마리는 정부가 짓고 있는 보호시설(생츄어리 :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로 간다. 내년 완공 예정이다. 약 50마리 정도가 2026년까지 자연사 또는 도살 된다고 가정하면, 약 100 마리가 남는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이와 관련한 환경부의 명확한 대책이 뭔지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자유연대가 조사하다 발견한 사육곰 농장의 모습. 위생 상태가 열악했다./사진=동물자유연대
"요즘엔 목매달아요. 그게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게 죽이는 방법이에요."(농장주 A)
"교수형. 3분, 5분이면 죽어."(농장주 B)
2021년 6월, 사육곰을 잔인하게 도살하고 불법 취식한 농장을 적발한 모습./사진=동물자유연대
시민 77.4% "남은 사육곰, 보호시설 만들어 수용해야"
베트남에 있는 곰 생츄어리의 전경. 생츄어리는 더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공간이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환경부에 제시한 해결책은 이랬다.
2022년 사육곰들을 위한 방사장 '곰숲'을 만드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보호시설에 가지 못하는 사육곰은, 고통과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락사'라도 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가 수의사와 수의학적 기술을 동원해 '편안히 죽을 기회'를 갖게 하고, 이에 대한 여론의 비난에 대해선 사과해야 한다고.
남은 사육곰을 위해 '보호시설'을 정부든 민간이든 지어야한다는 응답이 77%로 가장 많았다./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국립공원공단이 곰을 야생에 도입하는 전문가 집단이지만, 시설에서 잘 기르는 건 별개 문제"라며 "이대로 가면 애초 취지와 달리 동물원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전시 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봄날의 사육곰들에게 선물한 개나리. 가지고 노는 모습. 과거를 반성하는 공간으로서의 생츄어리, 더는 이런 폭력이 이리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없기를./사진=곰보금자리프로젝트(@project_moonbear)
"사육곰을 농장에서 꺼내어 생츄어리(보호시설)에서 살게 하는 건, 완전한 생활 환경이나 삶을 제공해주는 게 아닙니다. 생태계로 복귀시키는 일은 더더욱 아니죠. 여전히 제한된 공간에서 감금된 곰을 돌보는 일입니다. 앞으로 생길 곰 생츄어리는, 사육곰 산업이란 괴물을 길러냈던 과거를 반성하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이런 폭력이 인간-동물 관계에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