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차주별 DSR 규제가 생겼다. 금융회사의 자율적 대출심사 여지는 사라졌다. 금리와 만기가 같으면 어느 회사를 가든 대출한도가 같아졌다. LTV(담보인정비율) 규제처럼 DSR 규제도 개인별로 받을 수 있는 대출한도를 정하는 규제로 바뀌었다. LTV 규제가 금융회사, 담보물 중심이라면 DSR 규제는 차주, 소득 중심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보험업계에서 새 회계기준 IFRS17 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IFRS17는 보험 회계에서 쓰이는 여러 가정을 보험사별로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적용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보험회사별로 주력 상품, 가입자 등이 다르니 회사별로 다르게 가정할 수 있음을 인정한 제도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보험사의 가정에 '원칙'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당장 이익이 많이 나도록(혹은 많이 나게 보이도록) 가정하는 것이 '원칙'처럼 보일 정도다.
당국이 나서기 전 보험사의 피튀기는 싸움이 있었다. 어느 회사가 순이익 1등이냐, CSM(계약서비스마진) 1위냐를 두고 말이 많았다. 월급쟁이 사장이 주주들에게 설명했지만 이해를 구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 제 모습을 찾을 거라는 월급쟁이 사장의 설명을 경쟁에서 진 '패배자의 핑계'로 들었다. 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시작하자 보험사들은 또 한번의 피튀기는 싸움을 준비중이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지금 유리한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길 원한다.
금융권은 경직된 사고 때문에 비판받기 일쑤다. 경직된 사고의 이유 중 하나가 수많은 규제다. 규제엔 법과 시행령, 규칙만 있는게 아니다.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은 그 어떤 규제보다 강제성이 강하다. '구두개입'은 법보다 가까운 주먹과도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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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일부 규제는 당국 노력으로 사라지고 있다. 규제가 사라지면 혁신이 자란다. 전세계 첫 대환대출 플랫폼, 한화생명의 인도네시아 은행업 진출 등은 규제 완화의 결실이다. 하지만 규제가 사라지는 지금도 새로운 규제가 생기고 있다. 일부는 금융회사가 자초한 것이다. 서로 싸우다 당국에 조정을 바라면서 생겼다. 당국이든, 금융회사든 혁신을 외치고 있다. 혁신을 가져올 자율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되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