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준 화순전남대병원장(핵의학과 전문의)이 박테리아(세균)을 이용한 항암제 연구와 의사 과학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화순전남대병원
실험 과정에서 민 병원장은 뜻밖의 사실을 발견한다. 인위적으로 암을 유발한 쥐에게 살모넬라균을 투여하자 암 주변에 세균이 몰려간 것이다. 그는 "암이 있는 쥐에게 균을 주사한 다음 시간별로 이동 과정을 촬영했다. 1시간 동안에는 안 가더니, 다음 날 쥐를 재우고 특수 카메라로 촬영하자 균이 암 주변에 버글대더라"며 "소름이 돋을 만큼 흥분됐다"고 떠올렸다.
수술·화학 항암제·방사선이 암의 표준 치료로 정립되면서 세균을 활용한 암 치료는 서서히 잊혀갔다. 하지만 수 십년간 정복되지 않는 암을 두고 의학계는 또다시 세균, 구체적으로 세균이 촉발하는 '면역반응'으로 눈길을 돌린다. 암을 체내 면역세포가 공격할 수 있게 돕는 '면역관문억제제'(면역항암제)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부작용이 큰 화학 항암제에서 암에만 작용하는 표적항암제에 이어 3세대 항암제가 개발된 것이다.
수많은 실험을 거쳐 2017년 민 병원장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발표한 연구는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다. 연구팀은 식중독균인 살모넬라균을 유전자 변형을 거쳐 독성을 낮춘 뒤 암을 쫓는 '몸통'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비브리오균에서 '플라젤린B'라는 면역 유발 물질을 생산하는 유전자를 추출, 살모넬라균의 유전자에 끼워 넣었다. 면역세포를 끌어들이는 '양손'을 부착한 것.
결과는 놀라웠다. 대장암을 유발한 쥐 20마리에 살모넬라균을 주입했더니 한 달 이내에 11마리에서 암 조직이 완전히 사라져 치유율이 50%를 웃돌았다. 대장에 생긴 암뿐 아니라 간과 복부로 전이된 암까지 줄어드는 효과가 관찰됐다. 가정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민정준 화순전남대병원장(핵의학과 전문의)이 박테리아(세균)을 이용한 항암제 연구와 의사 과학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화순전남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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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병원장은 박테리아 항암제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2019년 '씨앤큐어'(CNCure)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신청을 위해 미국 위탁생산기관(CDMO)에서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 공정을 거친 시약을 만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독성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박테리아 항암제' 임상시험을 추진하는 곳은 6곳으로 씨앤큐어를 포함해 모두 임상 1상을 시작하는 단계다. 이 중에서 먹는 약(경구용)이 아닌 주사제(정맥 투여) 개발은 씨앤큐어를 포함해 2곳뿐이다. 정맥 투여 방식은 경구 투여에 비해 약물의 혈관 흡수 속도가 빠르고 적용 대상이 더 넓다는 장점이 있다.
암 치료의 '새로운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 씨앤큐어는 시리즈A까지 총 128억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금도 수많은 벤처 투자자와 글로벌 제약사가 민 병원장을 만나기 위해 화순을 찾는다. 최근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리뷰 임상 종양학'에서 창간 후 최초로 싣는 박테리아 항암제 논문을 민 병원장에게 의뢰한 사실이 알려진 후로는 협업 문의가 쇄도한다. 지난해 박테리아 항암제를 개발하는 스위스의 'T3파마'는 글로벌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에 5억800만달러(약 7000억원)에 인수됐다.
지난달 화순군이 정부로부터 '바이오 특화단지'로 선정되면서 향후 백신·면역치료 분야의 인허가 처리, 규제 완화, 세제·예산 지원 등 다양한 혜택도 기대된다. 민 병원장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제약사와 투자 논의도 진행 중"이라며 "박테리아 항암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최고의 위치를 점유할 수 있는 드문 분야다. 의사 과학자로서 한국이 면역세포치료제 분야를 선도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