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의학드라마를 보다 보면 의사가 환자의 건강상태를 진단할 때 흔히 '바이털'로 불리는 '활력징후'(vital sing)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활력은 체온, 맥박, 혈압, 호흡수, 산소포화도를 통해 진단하는데 활력이 떨어지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활력'이 떨어지면 현재 경쟁력은 물론 미래의 번영을 기약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가의 활력은 어디서 나오나. 3개의 기관차가 있다.
'정치'도 국가 활력의 핵심요소다. 정치는 사회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시민을 설득해서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이 '제세안민'(濟世安民)과 '공익'(公益)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 사회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 의미 있는 시끄러움이 된다. 반대로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이 앞서면 정치는 활력이 아닌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기관차가 된다.
'인재주도 성장시대'다. 대학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세계 10위권 경제력이 무색할 정도로 연구·개발 경쟁력이 떨어졌다. '게임체인저'라는 '양자컴퓨팅' 분야의 어느 전문가는 미국 IBM 생활을 접고 고국에 와서 연구의 꿈을 펼치려고 했지만 포기했다. 연봉은 3분의1로 줄고 비싼 실험 기자재를 대학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학생들은 '에라스무스 플랜' 지원으로 한 학기 이상을 외국 대학에서 배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비행기 삯과 생활비 걱정에 교환학생을 주저하는 게 현실이다. 학생의 마음건강을 돌보는 정신과 의사를 캠퍼스에 상주시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대학이 '대학스럽지' 못한 것도 문제다. 대학은 건강한 사회비판과 미래담론을 제시하는 지성인 집단이다. 하지만 재정확보를 위해 정부사업에 매달려야 하는 대학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세계는 대학이란 기관차를 활용해 과학기술과 인재전쟁에 나섰다. 나라 빗장을 잠갔던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나서면서 미국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들에게 영주권을 주겠다고 선언한 데는 이유가 있다. 100년 전 도산 선생이 청년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처럼 나라의 운명은 대학의 활력에 달렸다. 문제는 재정이다. 늦기 전에 정부와 기업은 '책임 있게' '실효적으로' 나서야 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