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뜬장에 갇혀 교배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번식장 강아지들의 삶. 그리하여 가장 작고 어린 새끼를 생산하고, 제왕절개로 빼내어 경매장에 팔고, 다시 펫숍으로 간다. 펫숍에서 보는 아기 강아지들이 그리 온 거다. 전남 함평 번식장 뜬장 아래에서 찍은 엄마 강아지의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전남 함평 강아지 번식장이었다. 사람들에게 인기 좋은 '말티즈'를 가장 많이 생산했다. 생명에게 '생산'이란 표현을 쓰는 건, 그 삶을 보면 그게 적확한 표현이기에.
말티즈를 키워본 사람은 알 거다. 통상 말티즈들의 성격이 이리 움츠러들어 있지 않단 걸. 밥그릇 앞에서 잔뜩 겁먹고 바라보던 강아지. 그럼에도 바라보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새끼는 팔려 가고 엄마 개는 다시 임신토록 했다. 제왕절개를 하고 또 새끼를 뺐다. 빼고 나면 다시 임신을, 임신하면 다시 출산을, 출산하면 다시 임신을, 임신하면 다시 출산을, 출산하면 다시 임신을.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뜬장 한편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사진=남형도 기자
"고생했어, 얼른 가자.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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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가 짐작하기 힘든 강아지의 과거를 토옥, 톡, 토닥이며 걸었다.
폐업한 강아지 번식장…66마리를 살리러 간 사람들
반기는 강아지들을 보며 이리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번식장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허가받은 곳과 숨어서 불법으로 하던 곳. 허가는 20여 마리로 받았으나, 불법 비닐하우스에서 대규모로 더 하고 있었다.
전남 함평 번식장 뜬장에 갇힌 강아지들./사진=남형도 기자
"왜 동물 단체에 주냐고 농장에 넘기라고, 같은 (번식장) 업종에서 주인한테 욕을 했다는 거예요. 괜히 사람들 오면 열악하다고 욕먹지 않느냐면서…."
전남 함평 번식장 뜬장에 갇힌 강아지들./사진=남형도 기자
데려가는 순간부터 보호와 치료와 입양과 모든 게 다 부담인 걸 알면서도, 기꺼이 전남 함평까지 달려온 이들. 그리 움직이게 하는 건 어떤 맘일지. 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가 말했다.
뜬장을 열고 팔을 뻗어 강아지들을 구조하는 김복희 코리안독스 대표. 이리 구조한 번식장 개만 수없이 많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유리 진열장 속 아기 개의 엄마가, 이리 삽니다
전남 함평 번식장에 도착해 구조 활동에 나선 코리안독스 활동가들(파란 옷)과 도로시지켜줄개 활동가들(분홍색)./사진=남형도 기자
깔려 있는 이불도 원래 없었을 거라고, 동물 보호 단체 활동가들은 짐작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숨이 턱 막혔다. 좁은 뜬장 한 칸에 네댓 마리씩 욱여넣어져 있었다. 털은 하나같이 꾀죄죄했고 축축한 눈물자국과 눈곱이 그득했다. 뚫린 바닥으로 대소변이 떨어졌고, 그 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배변 내음이 진동했고, 커다란 선풍기 몇 대가 놓여 있었다.
작은 발이라 숭숭 뚫린 바닥에 자꾸만 빠졌다. 걷는 것조차 불편하게 만든 뜬장의 삶./사진=뜬장을 다 부숴버리고 싶은 남형도 기자
흥분한 몇몇 강아지들이 두 발로 서며 꼬릴 흔들었다. 빙빙 돌다 자그마한 다리가 쑥, 밑으로 사정없이 빠졌다. 그럴 때면 활동가들이 살포시 잡아 다시 밀어 올려 주기도 했다. 그래도 뻥뻥 뚫린 터라 계속해서 빠졌다. 걷는 것조차 불편한 삶. 한쪽에 깔린 이불을 보며 이효정 대표가 말했다.
"단체에서 온다고 하니까 그나마 이불이라도 급히 깔아놓은 것 같아요."
눈 한쪽 없고, 발톱 빠지고, 유선 종양 무더기로 발견
유선 종양이 있는 아이들이 이리 많았다. 치료에도 비용이 많이 든다./사진=남형도 기자
뜬장 문이 철컹, 열렸다. 구조가 시작됐다. 김복희 코리아독스 대표가 아이들을 달래며 손을 뻗었다. 철창이 평생 세상이었을 강아지들이 구석에 몰렸다. 작은 몸들이 포개졌다. 반대편에서 밀며, 달래며, 조심조심 꺼내기 시작했다. 덜덜 떨면서 품에 안기던 강아지들.
오래돼 이미 딱딱해진 유선 종양이 있던 강아지. 얼마나 고됐을지./사진=남형도 기자
"이거 봐요. 완전 오돌토돌한데, 유선 종양 같은데요. 오래되어서 엄청 딱딱해요."
그래도 좋다고 하는 게 미안했다. 이렇게 만든 이들과 같은 종족인 사람에게./사진=남형도 기자
김 대표가 말했다.
근친 교배를 많이 시키면 이리 기형인 아이들이 많이 나온단다./사진=남형도 기자
좁은 뜬장에 여러 마리 개들을 가둬놓으니, 서로 물어 눈을 잃기도 한다고./사진=남형도 기자
나오기 힘들어하며 바닥에 털썩 붙은, 하얀 말티즈 하나를 꺼내어 품에 안았다. 헥헥대는 뜨거운 숨이 귀에, 작은 심장이 콩닥콩닥하는 게 온 가슴으로 느껴져 울컥했다.
품에 이리 안기는 것도 처음일 거라고. 잔뜩 긴장한 강아지를 어루만져 주는 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 그는 자주 울먹였다. 힘든 현장이지만 마주해야 한다고 했다. 알려줘야 한다고. 펫숍의 강아지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사진=남형도 기자
마지막 아이를 꺼내고 뜬장을 부쉈다, "안 그러면 또 데려와"
뜬장 아래에서 찍으려 하니, 바라봐주던 강아지./사진=남형도 기자
그리 빠르게 다 꺼내고 마지막 말티즈 한 마리가 남았다. 이 대표가 말했다.
"마지막 애기네, 가자. 너 혼자 남았어. 빨리 와. 오구오구, 이리 와. 미안해."
구조 뒤 이동장에서 기다리는 번식장 강아지들. 김정현 비마이독 대표는 "이 강아지는 너무 어릴 때 새끼를 뺀 것 같아 머리를 바들바들 떠는 것 같다"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잠깐만, 전지가위 가져와요."
힘든 삶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좋은 가족 만나 오래도록 사랑 받기를. 아픈 기억이 다 지워지길 바라는 건 욕심일지라도, 밝은 기억으로 이불처럼 포근히 덮히기를./사진=남형도 기자
"자기가 폐업한다고 했지만, 또 강아지들을 갖다 놓게 되거든요, 사람이란 게. 그래서 일단 못 쓰게 철저하게 파괴해두고 가야 해요. 그런 걸 수도 없이 많이 봤어요."
뜬장을 그대로 두고 가면 또 데리고 올 거라며, 마지막 분해 작업까지 꼼꼼히 하던 코리안독스, 도로시지켜줄개 활동가들. 멋졌다./사진=남형도 기자
강아지들을 괴롭혔던 뜬장이 무너졌다. 속이 후련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강아지 공장' 2000여 개…"지킬 수 없다, 이런 법으로는"
얼굴 주변이 꾀죄죄하고 눈물 자국이 많은 건 기본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여길 어떻게 찾으셨네요? 알 방법이 없어요. 우리가 세세하게 다 알 수가 없으니까."
2022년 11월. 연천 번식장의 작은 개 '루시'는 뜬장에 웅크린 채 발견됐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죽어가고 있었다. 2.5킬로 밖에 안 되는 강아지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느라 자궁이 다 빠져버렸다.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와 눈을 맞춘 뒤 숨을 거두었다. 거기는 심지어 영업 허가를 받은 곳이었다. 비좁은 뜬장에 땅바닥은 분뇨에 쥐 사체까지 굴러다녔다.
남양주 개 번식장 내부 전경. 철로 된 뜬장에 개들이 들어가 있다./사진=위액트 인스타그램(@we.a.c.t)
'번식장(약 2000개)-경매장(17개)-펫숍(약 3000개)'. 연결고리가 이렇다. 연간 추정 20만 마리에 달하는 동물 판매 구조다. 동물권에선 이중 중간 역할인 '경매장'을 없애는 게 핵심이라 지적한다. 강아지 한 마리당 11% 수수료를 취하며 펫숍에 물건처럼 공급하고, 번식장이 더 어리고 작은 강아지를 대량 생산토록 부추긴단 거다.
지난해 11월,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었던, 공장식 번식장과 경매장을 철폐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형 루시법'.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카라 등 13개 단체들로 이뤄진 '루시의 친구들'이 번식장 근절을 위해 애쓰고 있다./사진=동물권행동 카라
남양주 번식장에서 구한 개.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사진=위액트 인스타그램(@we.a.c.t)
이효정 도로시지켜줄개 대표의 품에 안긴 강아지가, 앞발을 수영하듯 움직이는 모습. 뜬장에 있던 아이들을 구조했을 때 보이는 특성이란다.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해서./사진=남형도 기자
구조 과정에서 시선을 붙드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활동가 품에 안긴 채 차량으로 가던 하얗고 작은 강아지가, 허공에서 천천히 발을 움직이는 모습. 마치 수영을 하듯 발길질을 하는 거였다.
뒤늦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뜬장에 있던 아이들은 태어나 처음 땅을 밟아보기에 그런 거라고.
뚫린 바닥에 빠질 걱정 없이, 편히 땅을 밟는 것만으로도 이리 좋아서. 얼마나 맘이 아프던지./사진=코리안독스 인스타그램(@kdsrescue)
이효정 대표가 번식장을 떠나며 남긴 이야기가 생각났다. 너무 중요하기에 끝으로 적는다.
"펫숍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어요. 우리 사회가 끔찍한 이 현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번식장에서, 작고 예쁜 아이들을 얻기 위해 어두운 곳에서 학대를 자행한단 걸요. 유리장 속 아기 강아지들이 태어난 곳, 우린 엄마 강아지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4개 동물 보호 단체 이름을 기록해둔다. 코리안독스, 도로시지켜줄개, 다솜, 고유거애니밴드./사진=코리안독스 인스타그램(@kdsresc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