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우직하게 흐름을 거스르는 '역성' [뉴트랙 쿨리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7.0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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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름모/사진=마름모


음악 시장의 주도권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넘어가고, 숏폼과 챌린지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노래 한 곡의 길이는 짧아지고 정규 앨범보다는 미니앨범, 싱글이 힘을 얻고 있다. 가수 이승윤은 이러한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뚝심으로 우직하게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이승윤은 지난 3일 새 앨범 '역성'을 발매했다. 지난해 1월 발매한 정규 2집 '꿈의 거처' 이후 약 1년 6개월 만에 발매하는 새 앨범이다. 정해진 흐름을 거부하고 가요계에 거대한 파장을 만들겠다는 이승윤의 각오를 담았으며 올 하반기 발매를 목표로 준비 중인 정규 3집의 수록곡 중 일부를 담아냈다. '폭포'를 시작으로 '캐논'까지 총 8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폭포'와 '폭죽타임'의 더블 타이틀곡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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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곡 '폭포'는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장르의 곡이다. 6분이라는 긴 호흡 속에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밴드 사운드가 조화를 이루며 눈앞에 폭포가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다른 타이틀 곡 '폭죽타임'은 포스트 개러지 스타일의 음악이다. 여름밤 페스티벌 엔딩을 연상케하는 펑키한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이승윤은 '폭포'와 '폭죽타임'에 대해 각각 관성과 어둠을 거스르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다른 수록곡들의 소개를 찾아봐도 마찬가지다. '역성'에 수록된 모든 트랙은 무언가를 거스르고 있다. 판을 거스르는 '검을 현', 시스템을 거스르는 'SOLD OUT', 결과를 거스르는 '리턴매치', 순도를 거스르는 '28k LOVE!!', 목적지를 거스르는 '내게로 불어와', 완벽을 거스르는 '캐논' 등 다채로운 감성과 풍부한 밴드 사운드를 자랑하는 수록곡 들은 거스름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뭉쳐 높은 짜임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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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무언가를 거스르는 노래를 모아 완성한 이번 앨범은 현재의 음악 시장을 거스르는 앨범이 됐다. 타이틀곡 '폭포'의 길이는 6분이 넘어간다. 2분 대의 노래가 즐비한 현재의 트렌드와는 분명 거리가 멀다. 이승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1분 10초 가량의 긴 전주를 기다려야 한다. 다른 노래라면 인트로와 벌스는 물론 훅과 브릿지까지 나올 수 있는 시간이다. 기다림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노래로 넘어갈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이승윤은 "걷어내고 싶지 않은 감독판 같은 것"이라며 시대의 흐름을 역행했다.


선공개 곡이 아닌 선공개 앨범이라는 콘셉트 역시 마찬가지다. 선공개는 앨범이 발매되기 1~2주 전 수록곡 한두 곡 정도를 미리 공개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승윤은 정규 앨범 발매 날짜가 아직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려 8곡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이 정도의 볼륨이라면 미니 앨범(EP)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전체적인 러닝타임을 고려하면 이 자체를 하나의 정규 앨범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윤은 '선공개 앨범'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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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역행하는 이승윤의 모습에서는 그의 음악적 고집이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타이틀곡과 수록곡 한두 개만 찍어 듣는 시장에서 정규 앨범 속 많은 수록곡들은 소위 '찐팬'이 아니라면 빛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필연적으로 많은 노래가 담겨야 하는 정규 앨범은 많은 아티스트를 고집에 빠지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승윤은 JTBC '싱어게인' 우승 이후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세 번째 정규 앨범을 준비하며 우직하게 정규 앨범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이승윤의 정규 앨범은 스스로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완성도를 가졌을 때에 비로소 정규 앨범이 된다. 첫 정규 앨범이었던 '무얼 훔치지'(2016)가 다시 돌아봤을 때 만족스럽지 않다며 음원 사이트에서 모두 내렸던 일화에서 이러한 태도를 알 수 있다. 이번 '역성'이 정규 3집이 아닌 선공개 앨범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고집이 힌트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정규 앨범으로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신조차도 "내년부터는 이렇게 못 낼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묵묵히 시대에 역행하는 이승윤의 모습은 굳은 뚝심으로 발매할 정규 앨범, 그리고 그 다음 공개할 음악들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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