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한 수 아래? 얕봤다간 백전백패…이차전지·풍력 이미 왕좌에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정혜인 기자 2024.07.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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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싼 것'만이 아닌 중국 (上)

편집자주 창이6호로 대표되는 중국의 발전하는 기술 경쟁력이 미국·유럽 등 전통의 주류 국가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하고 유럽과 함께 중국산 전기차 수출을 강하게 압박하는 건 그만큼 중국과 경쟁해야 할 상황임을 느낀다는 의미다. 중국은 제조업 강국을 넘어 '고품질 발전'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을 알아야 앞서거나 이용할 수 있다. 중국의 현 상황과 대응방안을 짚어본다.

'싸구려 중국산' 무시하다 큰 코…이미 곳곳서 한국 제친 지 오래
중국 국가우주국(CNSA)이 우주탐사선 '창어 6호'를 통해 세계 최초로 달 뒷면 샘플을 채취했다고 4일(현지시간) 밝히며, 탐사선 카메라로 촬영한 달 표면의 모습을 공개했다. 2024.06.04  /AFPBBNews=뉴스1중국 국가우주국(CNSA)이 우주탐사선 '창어 6호'를 통해 세계 최초로 달 뒷면 샘플을 채취했다고 4일(현지시간) 밝히며, 탐사선 카메라로 촬영한 달 표면의 모습을 공개했다. 2024.06.04 /AFPBBNews=뉴스1


"전 세계에서 가장 스피디하게(빠르게) 중국과 협업했던 한국이 이제는 가장 스피디하게 중국을 잊어가고 있다."

현지서 한중 과기협력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김종문 KIC(글로벌혁신센터)중국 센터장이 지난달 26일 베이징 중국한국상회 포럼 강연 말미에 한 말이다. 한중관계 현 주소와 현지 우리 경제주체들의 위기감이 요약된다. 현장에서 만난 한 금융기관 현지법인장은 "중국의 상황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이길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했다. 이 역시 공통 컨센서스다.



작년 중국은 전년비 58% 늘어난 491만대 신차를 수출하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이 됐다. 전기차는 내수를 바탕으로 단연 세계 1위다. 전기차배터리(이차전지)도 마찬가지다. 올해 1~5월 기준 1위 CATL(37.5%), 2위 비야디(15.7%)만으로도 글로벌 점유율 53.2%다. 한국 3사(LG·삼성·SK)를 모두 합해도 CATL에 못 미친다. 풍력·태양광 등도 중국이 1등이다. 반도체도 매섭게 따라온다.

우주개발 분야에서는 2007년 창어1호 발사 이후 십수년 만에 전혀 다른 나라가 된 중국이다. 수십년간 이어진 미·러 양강구도는 이제 분명히 미·중 구도로 바뀌었다. 한중 간 우주항공기술 격차는 매년 벌어져 2022년 기준으로는 약 6년 정도가 됐다. 그나마도 한국 집계다.



전기차배터리 점유율 톱5/그래픽=이지혜전기차배터리 점유율 톱5/그래픽=이지혜
◆ '삼국지·수호지'가 중국의 전부?

올 들어 중국 측이 한국 특파원단 포함 기자단을 초청, 공개한 현장들은 앞서 몇 년 중국이 보여준 현장들과는 전혀 다르다. 세계 최대 풍력발전 테스트 시설과 전기차 테스트 시설, 석유화학단지, 핵기술 접목 바이오 측정장비 개발시설, 수소연료전지 개발 및 생산시설까지 문을 열어줬다. 미래 에너지와 모빌리티를 망라한다. 이제는 보여줄 시점이 됐다는 거다.


KIC 김 센터장은 강연에서 "한국인들이 삼국지와 수호지, 진시황을 아는 게 오히려 중국을 상대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옛 중국의 이미지에 머물러있지만 중국을 꽤 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와서는 같은 도시인 심천(선전)에서 "여기서 선전은 얼마나 머냐"고 묻거나, 서쪽 끝 청두(성도)와 동쪽 끝 칭다오(청도)를 헷갈리는 한국인도 있었다.

중국 광둥성 양장 국가해상풍력장비 품질검증·측정센터 내부./사진=센터 제공중국 광둥성 양장 국가해상풍력장비 품질검증·측정센터 내부./사진=센터 제공
[베이징=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과학기술회의·국가과학기술상 시상식·양원(중국과학원·중국공정원) 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식 현대화는 과학·기술 현대화로 지탱해야 하고 고품질 발전은 과학·기술 혁신과 새 동력 육성으로 이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24.06.25.[베이징=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과학기술회의·국가과학기술상 시상식·양원(중국과학원·중국공정원) 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식 현대화는 과학·기술 현대화로 지탱해야 하고 고품질 발전은 과학·기술 혁신과 새 동력 육성으로 이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24.06.25.
지금 한국과 중국 관계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가장 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이후 중국은 한국을 등한시하고, 한국도 특히 이번 정부 들어 미·중 갈등 본격화와 함께 중국과 관계 개선 노력을 멈췄다. 정치·외교적 판단에 따른 득실이야 나중에 따져볼 일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중국을 알려고 하지 않는 사이 중국이 전혀 다른 나라가 되고 있다는 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근 타이틀인 '고품질 생산'은 서방 대중국 압박에 대응하는 중국의 전략을 그대로 요약한다. 과잉생산·저가공세·부당보조금으로 아무리 때려도 "고품질 발전 과정"이라고 명분을 세운다. 실제로도 고품질 발전에 전력투구한다. 상반기 중국 100대 부동산기업 매출 39.5%(전년 동기 대비)가 증발했는데, 이전처럼 돈을 풀어 살리지 않는다. 돈 쓸 데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WIPO(세계지재권협회) 세계혁신지수 작년 12위(2022년 11위)다. 한국(10위)보다 낮으니 됐다 싶을 수 있지만 20위 내에 중진국은 중국뿐이라는 것이 포인트다. 연구자들은 '개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걸 중국 경제의 가장 무서운 점으로 꼽는다. 그 과정에서 쌓아올린 게 반도체, 전기차와 배터리 철옹성이다.

또 한국연구재단과 중국과학원 등의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 2022년 중국이 지출한 정부·기업 R&D(연구개발) 예산 총합은 7392억달러(약 1027조원)다. 비교할 만한 나라는 9232억달러(약 1283조원)를 쓴 미국뿐이다. 미국의 2020년 R&D 예산은 7302억달러로 중국의 2022년 예산보다 적다. R&D 투자 기준으론 중국이 미국에 2년 격차까지 따라붙었다는 얘기다.

중국은 한 수 아래? 얕봤다간 백전백패…이차전지·풍력 이미 왕좌에
유니콘기업은 보통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기업가치 1조원을 달성, 주요 플레이어가 된 기업이다. KIC중국 집계에 따르면 글로벌 유니콘기업 중 중국 기업은 지난해 637개다. 역시 763개인 미국 정도만 비견되고 3등 인도(94개)부터는 견줄 의미가 없다. 특히 중국 유니콘기업 대부분은 첨단바이오(15%), 전자상거래(13%), 인공지능(11%), 반도체(10%) 분야에 전력투구 중이다.

변하는 중국, 알고 대응해야

어차피 한국은 미국 블록 안에 있으니 신경 안 쓰고 살면 되지 않을까. 그럴 수 없다. 한국의 '12대 국가기술'과 중국의 '14차 5개년 계획 주요기술'은 핵심이 그대로 겹친다. △첨단바이오 △미래모빌리티 △우주·심해·극지탐사 △수소 △신소재 △사이버보안 △양자기술 등 똑같다. 누가 누굴 베낀 게 아니라 미래 첨단기술이 그리로 흘러간다. 협력해서 같이 벌든지 싸워서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

중국은 한 수 아래? 얕봤다간 백전백패…이차전지·풍력 이미 왕좌에
반중진영의 선두처럼 보이는 미국 기업들은 중국과 관계를 끊었을까. 워싱턴과 베이징은 으르렁거리지만 미국 시가총액 10위권 기업 중 최근 CEO가 중국을 찾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다. 어떻게든 정부 규제를 피해 협력을 시도하고 있으며 정부도 정치적으로는 중국을 압박할지언정 기업인의 방문을 막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의 대 중국 투자총액은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에 달했다.

중국 축구에 '공한증'이 있다고 하는데, 공포는 지다보면 생긴다. 그럴수록 상대를 알려고 노력해야 할 텐데, 쳐다도 보지 않으려 하면 결과는 매번 같다. 기술력 대결도 마찬가지다. 알아야 이길 수 있다. 아직 기술과 상품의 완성도 면에서 한국이 중국을 앞서는 부문이 많지만 영원히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2022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R&D 예산은 1390억달러(약 194조원)다. 그리고 우리 유니콘기업 수는 작년 23개다.

지난 3일 인류 최초로 달 뒷면 흙을 갖고 돌아온 창어 6호는 중국의 기술력에 억지 물음표를 붙이는 한국과 미국 등 서구 국가들에 대해 중국이 내놓은 대답이다. '미국은 왜 화웨이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는 한국 특파원들 질문에 "화웨이 하나만 넘어뜨리면 중국을 몇 년은 늦춰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화웨이 관계자의 말에서 현실을 읽지 못하면, 미래 한국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차와 경쟁?" 비웃었는데 반전…"막아라" 기술전쟁 본격화
4월25일 중국 장쑤성 항구에서 수출 선박 선적을 앞둔 중국 비야디의 전기차 /로이터=뉴스14월25일 중국 장쑤성 항구에서 수출 선박 선적을 앞둔 중국 비야디의 전기차 /로이터=뉴스1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011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BYD)와의 경쟁에 대한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며 "그들(BYD)의 차를 봤느냐. 전혀 경쟁자로 보이지 않는다. 훌륭한 제품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12년 뒤인 2023년 4분기 비야디는 테슬라를 꺾고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 업체로 올라섰다.

미국이 지난 5월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유럽연합(EU)이 4일(현지시간)부터 일부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8.1%의 잠정 관세 부과를 시작한다. 중국이 유럽산 돼지고기 등에 대한 보복 관세를 예고한 만큼, 미국 주도의 중국산 전기차 견제가 중국과 서방 간 관세전쟁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서방은 미국 주도로 이뤄지는 이번 관세 부과 배경을 정부 보조금 지원에 힘입은 중국의 저가 과잉 생산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에 중국산 전기차가 수출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하며 미국의 관세 부과 초점이 중국산 전기차 수입 차단보다 관련 기술 경쟁력 제한에 있다고 본다. 또 이번 관세 갈등이 전 세계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는 거대 기술 무역 전쟁으로 확산할 거라고 경고한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EU의 잠정 관세를 두고 중국의 첨단기술 경쟁력을 견제하는 미국의 정치적 행보에 유럽이 동참하는 것이라고 진단하며 "세계 3대 경제 대국이 새로운 경쟁 국면에 진입했고, 이는 수십 년간 이어진 자유무역시장 정통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마티아스 바우어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 이사는 앞서 EU 의회 소식을 전하는 팔러먼트매거진과 인터뷰에서 EU의 이번 조치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동참하는 '정치적' 관세 부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에반 엘리스 미 육군전쟁대 연구교수는 이코노미스트지에 "(전기차 배터리 등) 친환경 기술은 앞으로 세계 경제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국제 에너지와 정보기술 통제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경쟁 심화를 우려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앞서 미·중 기술 전쟁이 전기차 등 세계 첨단산업 무역에 타격을 줘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2%에 달하는 1조달러(약 1389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대륙별 중국산 전기차 월 수입량/그래픽=이지혜대륙별 중국산 전기차 월 수입량/그래픽=이지혜
일각에서는 미국과 EU가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두고 미세한 온도 차를 보인 만큼 중국 첨단기술 견제를 둘러싼 서방의 분열이 시작됐다며 미·중 패권 경쟁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최근 중국 방문에서 EU의 잠정 관세와 관련해 "미국, 튀르키예, 브라질의 징벌적 관세와 다르다"며 "EU의 추가 관세는 지난 9개월간 (중국) 보조금 관련 면밀한 검토로 나온 '차별화된 관세"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미국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은 "미국은 (관세 인상으로) 세계 전기차 산업에서 (중국보다) 우위적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지만 유럽은 시장 내 공평한 경쟁 환경을 유지하는 것을 원한다. EU는 중국 전기차 수출의 최대 수혜국이지만, 미국은 아니"라고 짚었다.

EU의 관세 인상 조치가 중국을 전기차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미국과 정반대로 중국의 대유럽 투자를 늘리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비야디 등 중국 업체들이 최근 유럽 공장 설립 등으로 생산 현지화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이번 관세 인상이 이런 흐름에 속도를 붙게 할 거란 관측에서다.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이미 유럽 설립이 계획된 중국 전기차 공장은 8곳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U와 미국이 각각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슈퍼301조' 등 서로 다른 규정을 적용해 이번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미국 무역법 '슈퍼301조'에는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행위로 자국 산업에 차질에 생겼다고 판단되면 대통령 권한으로 무역 보복 조치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중국산 전기차를 자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반면 EU는 무역장벽 철폐를 위한 노력을 한다는 WTO 규정을 준수해야 하므로 중국산 전기차 유입 전면 차단이 불가능하다.

미국과 EU의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에 대한 세계 각국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캐나다는 지난 2일부터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 전 첫 단계인 한 달간의 공개 의견 수렴(협의)에 돌입했다. 반면 독일, 헝가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중국의 무역 보복 가능성과 자국 업체의 중국 사업 타격 가능성 등을 우려해 EU의 잠정 관세 부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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