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김희애 "'센 역할 전문? 저 편안한 생활 연기도 잘하는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7.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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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와 세번째 호흡!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NASA의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 정치권을 쥐락펴락하는 컨설턴트, 재벌가의 비리를 해결하는 해결사. 배우 김희애가 최근 작품에서 보여준 캐릭터들이다.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경제 부총리를 맡아 다시 한번 시청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스스로는 '발연기'라는 비판을 들을 각오마저 되어있었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돌풍'(연출 김용완·극본 박경수)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이야기다. 재벌과 결탁한 대통령을 심판하고 정치판을 바꾸고 싶은 국무총리 박동호는 설경구, 빛나는 지성과 단단한 소신으로 올라간 정치의 정점에서 박동호와 맞서는 경제부총리 정수진은 김희애가 맡았다.



한국 정치계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연상시키는 스토리와 빠른 속도로 휘몰아치는 전개는 한국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결과 '돌풍'은 공개 이후 '오늘 대한민국 TOP 10 시리즈'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작품이 공개되고 약 일주일이 지난 3일, 김희애는 취재진과 만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김희애는 작품이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 세 번이나 돌려봤다고 말하기도 할 정도로 '돌풍'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없으면 세 번을 보겠나'라고 스스로 반문했다는 모습에서는 '돌풍'을 향한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제가 혼자 동떨어져 있고 반응을 찾아보는 타입도 아니라 체감을 못 하고 있어요. 제가 세 번을 봤는데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새로운 걸 보는 느낌이었어요. 대본을 그렇게 열심히 봤는데 이런 새로운 부분이 있나 싶어서 죄지은 것 같기도 하고 반성도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재미없으면 세 번이나 봤을까'라는 위로도 했어요. 저는 정말 좋아서 설렘과 떨림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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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은 한때 박동호와 함께 대통령 장일준(김홍파)의 왼팔, 오른팔로 뜻을 함께했다. 그러나 장일준의 청와대 입성 이후 그와 함께 부패의 고리속으로 들어가 운명공동체가 된다. 이후 박동호가 장일준을 시해하며 폭주하자 그를 막기 위해 최전선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주인공의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 마냥 빌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서사가 드러날수록 정수진의 상황 역시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나쁜 여자, 나쁜 정치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읽으면서 서사를 알게 되자 '정수진도 피해자였구나', '불쌍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도 숨을 불어넣게 되더라고요.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런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배우조차도 처음에는 악당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잖아요."

'돌풍'의 주요 배역들은 전현직 정치인들을 연상시키는 설정이 담겨있다. 정수진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운동권 출신이라는 설정, 남편과의 관계 등을 바탕으로 특정 정치인을 지목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김희애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극적인 이야기일 뿐"이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한국사의 정치현실이 다이내믹 해서 기존의 인물과 겹쳐서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극적인 스토리를 위해 믹스된 극적인 인물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동안 출연했던 것들도 문제작들이라 부담은 없었어요. 그런 건 소재이자 재료일 뿐 연기자가 어떻게 연기를 하고 연출·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음식은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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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는 '더 문', '보통의 가족'에이어 '돌풍'으로 세 작품 연속 함께 호흡을 하게 됐다. 설경구가 '돌풍'을 출연한 데에는 작품을 적극 추천한 김희애의 공이 있기도 했다. 자신은 그저 소개해 준 역할자일 따름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준 김희애는 함께 호흡을 맞춘 설경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가 강추한다고 하겠어요? 저는 그저 소개해 준 역할자일 따름이죠. 인연이 되려니까 '보통의 가족' 마지막 촬영을 하던 날 그런 이야기가 오갔어요. 처음에는 용기를 안 냈는데 작품이 좋으니 한 것 같아요. 오랫동안 팬이었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신이자 영혼을 갖고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박동호의 연기를 할 수 있는 나이대의 배우들이 많겠지만,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맞는 배우가 있는데 떠오르는 배우가 많지 않거든요. 박동호를 설경구가 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대통령 시해와 이로 인한 조기 대선, 그 후 이어지는 탄핵 정국 등 급변하는 정치 상황을 다룬 '돌풍'은 박경수 작가 특유의 필체와 만나 상당히 문어체적인 대사를 구사한다. 김희애 역시 "너무 어려웠다"며 '대사를 잘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용어나 이런 게 너무 어려워서 읽기가 어려웠어요. 연기고 뭐고 간에 대사를 잘 전달하는 걸 우선으로 하자. 발연기라고 들어도 좋으니 딕션만 잘 전달하자고 생각했어요. 취향의 문제 이런 건 아니었어요. 하도 혀가 꼬이니까 설경구와 ''밥 먹었어? 배고프다'이런 대사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대본의 깊이가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혀가 꼬이도록 외웠음에도 새로운 작품처럼 보였던 건 인스턴트 식으로 써 내려간 글이 아니라는 점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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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를 비롯해 김영민, 이해영 등 함께한 배우들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김희애 역시 남다른 연기력으로 끝까지 작품을 이끌어갔다. 연기 생활 40년을 맞이한 김희애는 여전히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자신의 달라진 연기관을 전했다.

"젋은 후배들도 고민하는데, 더하지는 못할망정 계속해야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청자가 잘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모니터를 통해 보는 스태프들이 내 연기를 만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에는 제 앞의 배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시청자나 감독님이 만족하면 물론 좋겠지만, 내 앞의 배우가 저로 인해 연기를 잘햇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페이스메이커라고 할까요. 나이가 들면서 동료·선배들보다는 후배들과 연기를 할 때가 많은데 제가 선배라고 위축되지 않고 그 사람들이 마음껏 연기를 할 수 있게 디딤돌을 놔주는 게 제 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김희애가 오랜 기간 최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철저한 자기 관리에 있다. 김희애는 이런 관리가 이제는 하나의 루틴이 됐다며 선순환 사이클을 구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화장품 모델이고 식단을 해야 하다 보니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런 외적인 걸 위한 게 아닌 것 같아요. 하나의 루틴, 의식이 돼서 그렇게 해야 살아있는 걸 느끼고 그렇게 먹어야 맛있어요. 엄격하게 먹는 게 괴로울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게 먹다 보니 오히려 간이 세거나 가공이 많이 된 식품은 자연스럽게 싫어지게 되더라고요. 먹다보니 제 음식이 되고 운동도 하기 싫지만 하고 나면 시원하고요. 그런 선순환이 구축된 것 같아요."

'돌풍'을 비롯해 '퀸메이커', '더 문' 등 김희애가 최근 작품에서 연기한 캐릭터는 극적인 모습이 도드라졌다. 그러나 김희애는 "저는 편안한 것도 너무 잘한다"며 다시금 생활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저는 편안한 생활 연기도 잘하거든요.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작품을 하다보니 대사도 텐션있고 생활 연기가 아닌 것들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편안한 것들도 무척 잘하는 사람인데 감독님들이 잊으신 것 같아요. 잘하는 거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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