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이 보여준 ‘가브리엘’의 진정성

머니투데이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7.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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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연기 아닌 동화...먹먹한 감동

사진=JTBC사진=JTBC


“연기와 똑같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로서 이미 누군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 박보검은 망설였다고 했다. 밝혔다시피 배우로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 본 타인의 삶이기에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또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을 테다. 그래서였는지 실존하는 누군가를 대신해 그의 삶에 로그인 한 직후에도 다짐은 가벼웠다. 삶의 진짜 주인이 돌아왔을 때에 “(그의) 삶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잘 살아 보겠다”는 것.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의 태도는 달라졌다.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닌 그 사람 자체로 삶에 녹아들었다. 여러 번의 눈물로 아일랜드에 사는 루리에 동화됐음을 보여준 박보검. 그의 짙은 감성이 새 프로그램 ‘가브리엘’에 진정성을 더했다.

박보검이 출연하는 JTBC ‘My name is 가브리엘’(이하 ‘가브리엘’)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세계 80억 인구 중 한 명의 이름으로 72시간 동안 ‘실제 그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리얼리티 예능이다. 박보검은 ‘만약 연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제작진과의 대화를 통해 풍부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타인과의 감정 교류에 능하고, 누군가로부터 박수받고 환호 받을 때 벅차오름을 느낀다는 점, 또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 등을 털어놨다. 이를 토대로 박보검은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한 인물의 삶을 대신하게 됐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나라 낯선 도시, 어떤 정보도 없이 도착한 그곳에서 박보검의 손에 쥐어진 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주인공이 살고 있었다는 집 주소뿐이다. 이름조차 모르는 타인의 집에 도착한 박보검은 그의 방에 놓인 여러 물건을 둘러보며 앞으로 ‘내 삶’이 될 직업을 유추하고, 이름 등을 알게 된다. 휴대전화에는 예정된 스케줄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는데, 이를 토대로 오래된 친구들과 만난 그는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능청스럽게 말하며 제 신상을 넘겨받는다. 친구들을 통해 자신이 45살이며, 램파츠 합창단의 단장 루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이틀 후 버스킹 공연까지 예정됐다는 걸 인지한다.

사진=JTBC사진=JTBC


말 그대로 ‘멘붕의 연속’인 상황. 하지만 전날 밤 다짐처럼 박보검은 자신이 떠나고 루리가 돌아왔을 때 루리에게 피해가 남지 않도록 주어진 상황들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20대부터 40대까지 나이대도 다양한 루리의 친구들은 기억을 잃었다는 루리에게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친구였는지에 대해 따뜻하게 설명한다. 그들의 다정함은 어느 것 하나 짐작할 수 없어 당황스러워하며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박보검을 루리의 삶으로 인도하고, 그에게 안정을 찾아준다.

하지만 뒤이어 다가온 합창 연습은 친구들과 함께여도 쉽게 넘길 수 없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는 친구들과 거리를 좁혀가던 찰나에 리더이자 지휘자의 자격으로 수많은 합창 단원들의 연습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은 박보검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다행이라면 박보검은 대학과 군대에서 각각 무대 감독과 군악대 경험을 쌓았다는 것.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 박보검은 단원들의 노래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느낌대로 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다. 단원들은 리더 루리가 된 박보검의 아이디어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박보검의 코멘트가 더해진 음악은 더욱 풍성하게 완성돼 단원들과 박보검 모두를 만족시킨다. 이어 박보검은 루리의 솔로 파트가 있는 노래를 부르다 울컥하며 눈물을 보인다. 그는 “난 여기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 삶을 잘 살아가고 싶은데. 이분들이 (그런 내게) 잘하고 있다고, 잘해 낼 수 있다고 저를 다독이는 것만 같았다”라며 당시의 감동을 곱씹는다.

그러고 보면 박보검은 루리로의 삶을 사는 동안 자주 눈물을 보인다. 루리의 부모님 댁을 찾아 함께 식사를 하고, 집 보수를 도와드리는 등 마치 진짜 아들이 부모님과 함께하듯 짧지만 알찬 시간을 보냈을 때에도 그랬다. 박보검은 부모님과 헤어지기 전 루리의 피아노 앞에 앉아 부모님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노래를 하다 어쩐지 울컥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 어머니의 눈물에 박보검 또한 함께 눈물을 훔친다. 어쩌면 이름뿐이었을지 모를 아들임에도 이미 루리의 삶에 동화된 박보검으로 인해 노부모까지 깊은 감정의 파고를 탄다. 또한 박보검은 합창단원들과 연습 뒤풀이에서도 루리가 단원들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전해 듣고 훌쩍거린다. 그저 ‘타인의 이름’ ‘타인의 삶’이 아닌 그 인물 자체에 깊이 동화됐음이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사진=JTBC사진=JTBC
‘가브리엘’은 실존하는 누군가의 삶에 잠시 들어가는 것이기에 ‘이 인생의 원래 주인’을 생각하며 밥을 먹고 돈을 쓰고, 삶을 영위하는 모든 부분에서 원래 주인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속 캐릭터라면 타임라인이 존재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분석할 수 있을 테지만, 실존하는 인물이기에 ‘나름의 해석’도 할 수 없다. 때문에 어떤 준비도 없이 내던져진 타인의 삶은 쉽지 않고 당황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지만, 그 삶에 동화되는 순간 프로그램의 진정성은 더욱 높아진다.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나는 솔직하게 사흘 있는 거니까요. 거짓말하고 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또 여기 사는 사람이니까요”라며 혼란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던 박보검은 홀로 루리의 삶을 추측하던 시간을 지나 루리의 친구, 직업 등에 내던져진 순간부터 그 혼란스러움을 벗어던진다. “작품을 찍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닌 진짜 루리의 삶에 동화된 순간, 그도 모르게 시청자를 ‘가브리엘’의 진정성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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