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으로 찾았다 훅 빠져드는 점술사들의 '신들린 연애'

머니투데이 한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7.0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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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간대 2049 시청률 1위 등극! 해외서도 뜨거운 반응

사진=방송 영상 캡처사진=방송 영상 캡처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직업도 아니고..”

SBS 연애 리얼리티 ‘신들린 연애’ 3회에서 남성 출연자 이홍조는 여성 출연자인 조한나와 데이트 도중 이같이 말한다. 한나는 홍조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타 연애 프로그램이라면 여성 출연자 입에서 “그렇지 않아요”라는 대답이 나왔을 테지만, ‘신들린 연애’이기에 한나의 말없는 끄덕임에 공감하게 된다. 홍조의 직업을 폄하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그의 직업은 일련의 뿌리 박힌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홍조의 직업은 무당이다. 그의 데이트 상대 한나는 타로마스터다. 그간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흔히 볼 수 없던 직업이다. 의사, 변호사, 학원 강사 등 여러 직업군을 가진 일반인들이 연애 프로그램 단골로 출연해왔지만 홍조와 한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이는 흔치 않았다.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 중에 직업이 점술사였던 건 SBS Plus, ENA의 ‘나는 솔로’ 4기 정숙(무당) 정도다. ‘신들린 연애’는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전 출연진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점술사다. 그리고 이 지점이 ‘신들린 연애’만의 재미를 만든다. 낯선 영역이지만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 내렸고, 궁금하지만 쉽게 알 수 없던 이들의 연애.



사진=방송 영상 캡처사진=방송 영상 캡처
직업의 특색만으로 ‘신들린 연애’는 1회부터 흥미로운 장면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첫 만남에 서로의 MBTI를 묻는 장면이 웃길 수 있는 것도 ‘신들린 연애’라 가능한 부분이다. 출연진 다수가 합숙소 입소 전 생년월일로 자신과 잘 맞을 것 같은 상대를 점사로 유추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묻는다. 남성 출연진이 한 여성 출연진의 연애운을 오방기로 봐주고, 두 남녀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절로 향한다. 타로심리상담사 최한나는 호감이 가는 상대와 자신의 연애를 자점하다 데스 카드(부정적 의미의 카드)가 나오자 크게 동요한다. 상실감에 빠진 한나를 달래기 위해 무당 박이율이 꺼내든 카드 역시 긍정적 풀이의 점사다. ‘신들린 연애’ 러브 하우스는 밤샘 술자리 대신 점사를 보는 장면이 주요 장면을 채운다.



하지만 ‘신들린 연애’가 재밌는 건 신(神)의 뜻을 넘어 여타 연애 프로그램처럼 점술사들도 감정과 상황에 동요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점괘가 상충될 때 보이는 출연진의 갈등은 ‘신들린 연애’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무당인 함수현은 점괘가 가리키는 인연과 마음 가는 인연이 달라 고민했지만 결국 끌리는 이성에게 마음을 표현했다. 최한나는 이홍조와의 연애운에서 데스 카드가 나왔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끊어내지 못했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사진=방송 영상 캡처
역술가인 이재원은 합숙소에 연인이 될 인연이 있다는 자점을 쳤고, 이를 확신했다. 하지만 3일차에 0표를 받자 그는 크게 동요하며 눈물을 보였다. 격한 감정을 보이던 이재원은 결국 자진 퇴소하며 ‘신들린 연애’를 떠났다. 결과적으로 이재원은 자신의 점사대로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재원의 퇴소는 여타 연애 리얼리티와는 다른 혼란이 존재한 듯 보인다. 단지 0표를 받아 느낀 좌절감이 아닌, 자신이 업이자 신념인 점사대로 되지 않을 때의 두려움이 공존했을 수 있겠다 싶어서다. ‘신들린 연애’는 출연진들 간의 매칭을 지켜보는 것만큼 이들의 점사가 얼마나 맞아떨어지는 지 관찰하는 것도 주 시청 포인트다. 앞날을 점칠 수 있는 출연진들의 신비한 능력은 득과 실이 공존하는, 오직 그들만이 겪을 수 있는 딜레마다.


출연진들의 사연도 흥미롭다. 명문대 수학과를 나와 역술가가 된 이재원, 아버지가 스님이었던 까닭에 어릴 때부터 역술을 접한 허구봉 등 저마다의 배경으로 점술사가 됐다. 하지만 모두가 스스로 원해서 이 길을 택한 건 아니었다. 함수현과 이홍조의 경우가 그렇다. 함수현은 무당이 되기 전 10년차 은행원이었다. 함수현은 “평범하게 살려고 악 많이 썼다. (무당) 진짜 너무 안하고 싶었다. 10년 동안 오기로 버텼다“고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쏟았다. 이홍조의 사연도 비슷했다. 때문에 스스로 “자랑할 직업이 아니”라고 말한 그의 모습은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 무속인은 초월적 존재로 여겨지지만, 반대로 비과학적이거나 미신으로 간주되는 부정적 인식 또한 강하다.

사진=방송 영상 캡처사진=방송 영상 캡처
이 지점이 바로 ‘신들린 연애’의 미덕이다.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매개를 통해 평범한 객체로서 출연진을 바라보게 만든다. 원하는 상대방과의 데이트에 설레고, 마음에 드는 이성의 선택을 받지 못해 침울한 건 점술사들도 마찬가지다. 사랑 앞에 흔들리는 점술사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이들 직업에 대한 불편한 편견을 서서히 거둔다. 김재원 CP가 제작발표회에서 “미신 조장보다는, (점술가의) 인간으로서 딜레마를 보여주는 게 핵심이고, 그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의미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선명해진다. 이 프로그램에서 꿰뚫리는 건 결국 서로의 속내가 아닌 개개인의 감정 파고다.

제작진은 출연진의 직업적 특성으로 화제를 유인하는데 성공했고, 출연진들은 사랑이라는 친근한 매개를 통해 자신들을 둘러싼 벽을 허물고 있다. 지표가 말해주는 ‘신들린 연애’의 대중 반응 역시 호(好)에 가깝다. 지난주 방송된 2회는 동시간대 2049 시청률 1위(닐슨 서울 수도권 기준)를 기록했고, 공식 SNS 채널 조회수도 가파른 속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해외에서도 반응했다. 아시아 최대 범지역 동영상 플랫폼 뷰(Viu) 인도네시아에서 예능 프로그램 부문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시사점을 차치하더라도 ‘신들린 연애’는 예능적 재미가 확실한 프로그램이다. 2일 방송된 3회에서 이재원의 예상치 못한 퇴소가 흥미진진하게 다뤄진 데 이어 다음주에는 또 어떤 에피소드가 펼쳐질 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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