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뚫고 캐즘 넘는다"…K-배터리, '중저가 시장' 도전장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이세연 기자 2024.07.0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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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르노 LFP 배터리 공급계약/그래픽=윤선정LG에너지솔루션-르노 LFP 배터리 공급계약/그래픽=윤선정


LG에너지솔루션이 르노와 수 조원 대의 전기차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은, 중국의 '중저가 헤게모니'에 K-배터리가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FP 시장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텃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며 "글로벌 자동차 3대 시장 중 하나인 유럽에서 중국 기업의 주력 제품군을 뚫었다는 데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전기차용 LFP 시장 점유율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이름이 올라있는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CATL과 BYD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국내 기업들이 고성능이지만, 비교적 가격이 비싼 삼원계(NCM·NCA)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LFP 시장을 장악했다.

한때 주행거리가 짧은 중국산 LFP 배터리를 두고 '싸구려'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기술의 발전과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기)의 발발이 상황을 바꿔놨다. 저렴한 철과 인산을 사용하고, 안정적인 화학구조를 가지고 있는 점이 부각되자 '가성비 좋은' 배터리가 됐다. "고가의 전기차를 살 사람은 다 샀다"는 말이 힘을 얻자, 시장은 LFP 배터리를 탑재한 중저가 전기차에 주목했다.



테슬라, 폭스바겐, 현대차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앞다퉈 LFP 배터리를 채택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LFP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40%를 넘어서고, 2026년 47%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점유율 역시 덩달아 빠르게 올랐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제외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의 점유율은 2019년 9.2%에서 지난해 34.6%로 확대됐다.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롱셀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 롱셀 배터리
이런 상황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유럽에서 '중국 LFP'의 벽을 뚫은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당초 2025년 하반기에 LFP 배터리를 양산키로 했었는데 이 일정에 맞는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르노와 2025년 말부터 2030년까지 약 39GWh(기가와트시) 규모의 LFP 배터리를 공급할 계획이다. 삼성SDI와 SK온 역시 2026년 무렵 LFP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K-배터리가 LFP 시장에서 성과를 만들어낸다면 글로벌 중저가 배터리 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밖에 없다. 기술력에 가성비까지 갖춘 K-배터리가 중국 기업들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게 유력하다. 서원준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전지사업부장(부사장)은 "압도적인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을 통해 최고의 고객가치를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이 르노에 공급하는 LFP 배터리에는 파우치 배터리 최초로 CTP(셀투팩) 공정이 적용됐다.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제조원가를 줄이는 첨단 기술로 중국산과 차별화를 이뤘다. SK온의 경우 저온(-20℃)에서 주행 거리가 50~70%로 급감하는 LFP 배터리의 약점을 보완한 '윈터 프로 배터리'를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포트폴리오는 K-배터리의 또 다른 강점이 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만 봐도 하이니켈 등 프리미엄 제품부터 고전압 미드니켈과 LFP 등 중저가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무기 삼고 있다. 고성능 배터리를 위한 투자도 지속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3450억원을 투자해 호주 리튬 광산 기업 라이온타운의 리튬 정광 175만톤을 확보했다. 이는 한 번 충전에 500km 이상 주행 가능한 고성능 전기차 약 500만대 분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중저가 배터리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가격 경쟁력과 다양한 포트폴리오,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캐즘을 극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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