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에 돌직구 날린 박경수 작가의 '돌풍'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7.01 13:30
글자크기

탄탄한 이야기에 힘있는 메시지, 명배우들의 앙상블에 빠져들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끝까지 간다. 제목처럼 빠르고 강력하다. 어느 한쪽,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한국 정치 전체를 저격하는 정치 스릴러다.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국민들도 저격 범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스타 드라마 작가 박경수의 넷플릭스 진출작 ‘돌풍’은 대한민국 정치에 돌직구를 던진다. 지금의 정치 현실에 실망한 이들에게 이 드라마가 타는 목마름을 잠시나마 적셔줄 수 있겠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해왔는지 솔직히 고백하는 국무총리가 주인공이다. 그러니 그와 함께 돌풍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소재도 대담하다. 재벌과 결탁한 대통령 장일준(김홍파)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어 구속시키려 하자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는 대통령 시해를 감행한다. 대통령 시해를 둘러싼 박동호와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의 갈등은 신념의 대결이다. 박동호는 정경유착을 끊고 재벌 개혁을 완수하겠다던 대통령이 변심하자 처단을 결심하고, 정수진은 대의를 내세워 자신이 따르던 대통령의 오점을 덮으려 한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박경수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첫 화부터 극명하다. 정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구현되는지 한번 지켜보라는 것이다. 대체 역사극이지만 드라마 배경으로 청와대가 등장하고 차기 21대 대통령이 등장하는 설정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돌풍’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의 정치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정치인과 자기희생을 결심한 정치인은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인지, 정의 구현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던진다.



설경구 팬들이라면 ‘돌풍’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조연으로 출연한 1994년 MBC 드라마 ‘큰언니’ 이후 무려 30년 만의 드라마 출연이다. 넷플릭스 영화 ‘야차’(2022)와 ‘길복순’(2023)에 이어 세 번째 넷플릭스 작품이기도 하다. 설경구의 정치인 연기도 세 번째다. 영화 ‘1987’에선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정남 역을, 영화 ‘킹메이커’(2022)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김운범을 연기했다. 두 캐릭터가 실존 인물에 가까웠다면, ‘돌풍’에서 연기한 국무총리 박동호는 판타지적 인물이다. 정의 구현을 위해서라면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하는 개혁가로 설경구의 비장한 말투와 분노를 터트리는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김희애는 넷플릭스 드라마 ‘퀸메이커’(2023)에 이어 1년 만에 같은 정치 드라마 장르로 돌아왔다. ’퀸메이커‘에서 지략 넘치는 선거 전략가를 연기했다면, ‘돌풍’에선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타락한 정치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김희애는 작품마다 연기력뿐만 아니라 패션, 스타일까지 화제를 일으켰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선 오직 연기로 승부수를 띄운다. 극 중 김희애의 단발머리가 ‘안 예뻐 보인다’는 리뷰가 있을 정도로 과감하게 스타일을 내려놓고 연기에만 집중했다. 변질된 신념도, 사리사욕도 놓치지 않으려는 인물의 내면 갈등을 절묘하게 소화했다. 역시 ‘갓희애’다.


‘돌풍’은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탄탄한 연기 합을 보여주는 ‘어른의 드라마’다. 김미숙이 대통령 비서실장 역을 맡아 극 중 설경구와 김희애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잡으며 중견 여성 배우의 역할 폭을 넓혔다. 전배수는 박동호의 절친으로 그와 함께 부패를 척결하려는 서울중앙지검장 역을, 이해영은 정수진의 남편이자 물의를 일으키는 인물로 등장해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김홍파와 오미애가 전직 대통령 내외 역으로, 박근형과 김영민이 재벌 그룹의 회장과 아들 역으로, 김종구와 장광이 여당 중진 위원과 야당 대표 역으로 출연해 두 주인공의 팽팽한 줄다리기에 힘을 보탠다. 주인공들의 비서관 연기한 젊은 배우 임세미, 강상원의 활약도 주목을 끈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은 매화마다 명대사 열전이 펼쳐진다. 설경구와 김희애가 주고받는 대사량도 엄청나고 힘을 준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어록을 방불케 한다. ‘권력 3부작’이라 불리는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 ‘황금의 제국’, ‘펀치’ 이후 7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 박경수 작가가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매서운 시선을 촌철살인 대사에 실었다. ‘거짓말을 이기는 건 정의가 아니라 더 큰 거짓말‘이라는 대사는 씁쓸하기까지 하다.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배우들의 연기 공세와 휘몰아치는 대사는 ‘돌풍’의 강점이다. 다만 완급 조절이 아쉽다. 드라마 시작부터 큰 사건을 던지고 강타하는 전략이 초반 기세를 잡는 데는 성공한다.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박동호와 정수진의 대결은 드라마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데, 마지막 화까지 완급 조절 없이 강으로만 달리다 보니 힘이 지나치게 들어간 모양새다. 제목에 걸맞은 연출이긴 한데 매번 반전을 거듭하고, 촌철살인 대사도 동어반복 되면서 오히려 힘이 약해지고 만다.

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반전 카드와 단선적인 캐릭터 구도 또한 설득력을 떨어뜨리지만,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집약해 놓고 파격적 결말에 이르는 드라마 ‘돌풍’이 몰고 올 반응은 심상치 않을 것 같다. 지난 28일 공개된 ‘돌풍’은 현재 넷플릭스 대한민국 시리즈 TOP 순위 1위에 올라 있다. 한국 정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까지 돌풍을 일으킬지 궁금하다. 15세 관람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