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연 PD "'미수단'은 추리 예능이 아니다"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6.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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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넷플릭스/사진=넷플릭스


'더 지니어스', '대탈출', '데블스 플랜', '미스터리 수사단' 등을 연출한 정종연 PD의 작품들은 주로 머리를 쓰면서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은 이를 '두뇌 예능' 혹은 '추리 예능'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정종연 PD가 직접 말한 내용은 달랐다. 추리가 아닌 어드벤처에 기대치를 둬야 한다는 다소 의외의 내용이었다.

정종연 PD는 2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미스터리 수사단'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미스터리 수사단'(이하 '미수단')은 일반적인 부서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특수한 사건만을 전담하는 수사단이 기묘한 일이 벌어진 현장에서 사건을 추적해 가는 이야기를 그린 예능이다.



함께 모인 출연진이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고 특정한 장소를 탈출하는 프로그램의 큰 포맷은 정종연 PD의 과거 작품 '대탈출'을 연상시켰다. 정종연 PD 역시 이러한 반응을 인지하면서도 "그때보다는 좋은 출발"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시청자분들은 기존의 '대탈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평균적인 지점보다는 고점과 비교를 하실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미수단'도 기본적으로 멤버십 버라이어티인데 처음 시작할 때가 제일 어려워요. '대탈출' 초반이 특히 그랬고 '여고추리반'도 마찬가지예요. 그에 비해서는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익숙해지면 멤버들도 더더욱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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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미수단'이 정종연 PD의 여타 탈출 예능과 비교되는 지점은 혼성으로 출연진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정종연 PD는 "꺼리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안해보고는 모를 것 같아 그냥 질렀다"고 혼성 출연진의 이유를 설명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예능 PD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혼성이 되면 원하지 않는 텐션이 생길 때가 있어요. 서로 조심스럽기도 하고 괜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이요. 의식한다기보다는 몸에 배어있는 거죠. 그래서 꺼리는 부분이 있지만 안 해보고는 모르는 거 아닌가 싶어서 질렀어요. 궁금하기도 했고요."


다만, 예능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가수 카리나와 배우 김도훈을 섭외하는 등 전체적인 연령대는 많이 낮아졌다. 정종연 PD는 "주 시청층에 맞는 세대가 필요했다"며 "다른 세대의 예능 분위기를 느꼈다"고 전했다.

"저희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 연령대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낮아요. '데블스 플랜'도 어린 편인데 그보다도 어려요. 그런 프로그램이다 보니 고연령 출연자보다는 주 시청층과 맞는 세대가 필요하고 그 세대에 맞는 예능 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출연진들이 전문 예능인이 적고 이용진과 이은지의 경우에도 현장 버라이어티를 많이 한 친구들은 옛날 버라이어티의 느낌이 없었어요. 다른 세대의 예능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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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탈출', '여고추리반', '미수단' 등을 제작한 정종연 PD에게는 '추리 예능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그러나 정종연 PD는 "저는 '추리 예능'이 아닌 '어드벤처 예능'이라고 표현한다"고 강조했다. 머리를 쓰는 모습보다는 인물이 체험하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된 목표라는 뜻이었다.

"'미수단'을 추리 예능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저는 늘 '어드벤처'라고 표현하거든요. 계속 추리 예능을 하는 PD라고 불러주셔서 그게 숙명인가 보다하고 마는데, 프로그램을 설명할 때는 '시청자들이 할 수 없는 체험을 대신 하는 장르'로 보고 싶거든요. 한 이야기에 실제 인물이 들어가서 모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데블스 플랜'에도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대치가 그쪽으로 가있어야 서로 실망하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 같고요."

출연진을 구성하는 기준 역시 추리보다는 어드벤처에 초점이 있었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그들이 다양한 것을 체험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사건을 해결하기보다는 우리와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사람들이 잠재력을 발휘하는 스토리를 더 좋아해요. '대탈출'은 '오히려 더 부족한 사람들이 해낼 때 기쁨이 더 크다'는 기조였고요. '미수단'은 어느 정도 시청자의 시각에 맞는 수준의 출연진, 대신 적극적인 사람으로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녹화가 너무 질질 끌리면 안 되기 때문에 존박이나 혜리처럼 잘 끌어줄 수 있는 인물을 넣은 거고요."

특히 '미수단'의 첫 에피소드인 '악마의 사제'를 예로 들며 이 프로그램을 왜 '추리 예능'이 아닌 '어드벤처 예능'으로 봐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미수단'이 초자연적인 것을 다루는 수사단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는데 '악마의 사제'는 그 입문 성격을 가진 에피소드예요. 만약 현실적인 영화라면 종교 뒤에는 돈을 노리는 교주가 있다거나 그런 식인데 저희는 '진짜 지옥문이 열리는 거야'라고 보여주면서 판타지적인 느낌을 주는 거죠. 사실 추리물은 이렇게 비과학적인 것을 다루면 반칙이에요. 그래서 이미 이건 추리가 아니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대신 체험하는 어드벤쳐 예능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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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이 정종연 PD의 많은 작품을 '추리 예능'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들이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퍼즐이나 퀴즈 같은 요소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종연 PD 역시 퍼즐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언급하며 그 과정 자체를 바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스토리나 잘 짜여진 판으로 시청자를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탈출'이 기본적으로 방탈출 요소를 가져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제나 퍼즐적인 요소가 들어갔지만, 결국은 게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웬만하면 이런 것들을 안 하게 하고 싶은 거죠. 무언가를 알아내는 방법 자체를 현실적으로 바꿔보고 싶어요. 그게 퍼즐이라면 게으른 선택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심해 속으로' 에피소드에서 인공지능을 '여봐라'라고 부른 게 우리가 할만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다시 말해 '어드벤쳐 예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퍼즐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퍼즐이라는 게 어떤 면에서는 매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데 해가 되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퀴즈 그 자체는 재미있을 수 있지만, 양립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아 보일 때도 있어요. '스토리가 있는 판 안에 실제 인물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가 어드벤처 예능의 개념이라고 보면 퍼즐이 등장하는 부분이 몰입을 방해하니 그런 부분을 어떻게든 줄이고 그럴듯한 관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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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부작으로 공개된 '미수단'은 크게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시청자들은 다소 적은 에피소드 수에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정종연 PD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꺼냈다. 대신, 짧아진 만큼 자주 선보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솔직하게 많이 준비하기 힘들었어요. '대탈출'을 할 때도 가장 힘들었던 게 6개의 에피소드를 하는 거였어요. 혹시나 '대탈출'을 하더라도 에피소드를 줄일 계획이기는 했어요. 1년에 '대탈출'과 '여고추리반'을 같이 한 적도 있었는데 '대탈출'이 너무 힘드니까, '여고추리반'은 휴가라도 온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착시효과가 있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에피소드를 줄이는 방법 밖에 없었어요. 다만 짧아진 만큼 자주 선보일 수 있는 포맷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보이고 있어요."

제작발표회부터 라운드 인터뷰까지 꾸준히 새 시즌에 대한 바람을 전했지만 아직 새 시즌이 확정된 건 아니다. 정종연 PD의 보석함에는 여전히 많은 아이디어들이 잠들어 있지만, 당장은 '데블스 플랜'의 새 시즌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야기는 하고 있는데 아직 OK는 안 떨어졌어요. 늘 상상은 하는데 입금이 되어야죠. 상상이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한 체크가 중요하거든요. 작업으로 들어가 실제 현장에서 봤을 때 영 임팩트가 없는 경우도 있어서 검증해 나가면서 발전시키거든요. 그런게 해결되지 않아서 몇 년 동안 묵히고 보관함에 있는 것들도 있어요. 마지막 공개일로부터 한 달 정도 뒤에 결정이 나오는 나름의 프로세스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데블스 플랜2'의 녹화가 얼마 남지 않아서 거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시즌2를 가면 사람을 뽑아서 동시에 가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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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종연 PD는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최근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나 혼자 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간다"는 정종연 PD의 자신감에서는 앞으로 그가 또 어떤 새로움을 선보일지 기대가 생겼다.

"각자 PD들이 원하는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답은 시청자에게 있다기 보다는 PD의 주관 안에 있을 확률이 높고 그래야 프로그램이 다양해진다고 생각해요. 제 방향대로 가는 건 제 안에서 완성도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저는 제 갈 길을 가고 있어요. 사실 비슷한게 나오면 싫죠. 저 혼자 해야 되는건데. 그래서인지 늘 다른 장르, 다른 IP를 개척하고 싶은 생각이 많아요. '대탈출'을 할 때 그 전에 없던 걸 만드는 거라 보람도 크고 시청자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것 같아요. 정말 좋은 경험이라 앞으로도 특이하고 아무도 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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