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지하주택이 비어 있다. 이곳은 2022년 여름 폭우로 인해 침수된 후 여전히 세입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서울 종로구의 한 반지하주택에 살던 이모씨(32·남)는 SH(서울주택도시공사) 상담사 답변을 듣고 "어이없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2023년 7월 장기안심주택 청약 안내문에서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주하는 세대에 1회에 한해 최대 40만원 한도내에서 이사비를 지원한다'는 문구를 확인하고 SH에 해당 지원을 받기 위해 연락했다. 그러나 SH를 대리하는 법무사는 '반지하 이사비 예산 지원은 없어졌다'고 했다.
올여름에 강력한 폭우가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오던 지난 4월, 이씨는 약 70만원을 들여 직접 반지하에서 지상층으로 이사했다. 서울시나 SH로부턴 이사비용은 물론 반지하 지원 혜택에 관해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그는 "반지하에 살때는 물론이고 이사 과정에서 서울시, SH, 종로구, 성북구 등으로부터 반지하 주택 지원과 관련해 지원받을수 있는 제도나 혜택에 대해 단 하나의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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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SH홈페이지에 올라온 서울 보증금지원형 장기안심주택 청약 안내문. 반지하 세대 이사비 지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24년 공고부터는 해당 내용이 삭제됐다. /사진=SH 홈페이지
이어 "다만 보증금지원형 장기안심주택과 같은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를 대상으로는 반지하특정 바우처 사업을 지원하지 않는다"며 "이미 공공임대주택 지원을 받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씨가 공공임대주택인 서울 보증금지원형 장기안심주택 청약에 당첨됐기 때문에 지원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는 반지하 등 비정상 거처 대응이 과도하게 분산돼 있으며 적극적이지 못한 행정 대응이라는 지적에 대해 "반지하 등 비정상 거처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안전을 위해 다양한 시책을 마련하여 추진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행정2부시장 산하 각 부서 기능과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서간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가구별 여건을 반영한 촘촘한 주거안정망을 구축했다"라며 "효과적 정책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반지하주택에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지난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반지하주택에 사는 주민 장씨가 하수구를 가르키며 설명하고 있다. 장씨는 "서울시에서 역류방지장치를 설치해줬지만 여전히 물막이판을 넘어오는 물보다 도로와 집안에서 역류하는 물이 더 무섭다"고 했다. /사진=정세진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에 사는 장모씨(70·여)는 "걱정을 안할 수 없다"며 "비는 온다는데 물막이판이랑 역류방지장치를 설치했지만 사실 더 걱정되는 건 하수도 역류다"라고 했다. 관악구 신림동에선 2022년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이 사망했다.
장씨는 "그때(2022년 여름 폭우)도 그랬다"며 "밖에서 들어오는 물보다 하수구에서 역류해 집안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게 더 무서운데 비가 오면 어떻게 될지 두렵다"고 했다.
신림동 주민 박모씨(72·여)는 "2022년 폭우 이후로 지하층을 비워두고 있다"며 "자동차 부품을 취급하는 법인에 창고로 세를 줬는데 법인에 대해서는 어떤 피해지원도 못 해준다고 해서 그냥 지하를 비워두고 있다. 재산세만 계속 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 여름에 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내돈으로 비를 막아줄 처마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물막이판이 높이가 다들 비슷한데 여기 같이 저지대는 좀 높아야할 같다"며 "지난번(2022년 폭우)에는 물 높이가 무릎을 한참 넘겼다"고 했다.
지난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가에서 박씨가 물막이판의 높이가 너무 낮다고 말하고 있다. 박씨는 2022년 여름 수해 당시 현재 설치된 물막이판 높이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물이 찾다며 손으로 높이를 가늠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지난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가에서 침수 예방을 위해 처마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서울시는 이와 함께 반지하비율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와 모아타운 대상지를 선정키로 했다. 실제로 2022년엔 신통기획으로 선정된 25곳 중 9곳의 평균 반지하비율이 65%를 넘었다. 올 상반기 뽑힌 12곳 가운데서도 8곳의 평균 반지하비율이 69.8%였다. 2022년 하반기 모아타운 선정대상지 27개소의 반지하주택 비율은 62%가 넘었고 올해 대상지 6곳 가운데 3곳의 평균 반지하비율은 74.4%였다.
반지하로 빗물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물막이판 설치에도 나섰다. 지난 5월 22일 기준 침수우려가구 2만4842가구 중 72%(1만7950가구)에 물막이판을 설치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서울시의 정책이 여전히 미비하단 지적도 나온다. 물막이판 설치의 경우 약 4000여가구는 집값이 하락할 것을 우려한 집주인들의 반대를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3000가구도 집주인과의 연락 두절로 인해 물막이판이 보급되지 못했다.
반지하주택 거주자가 지상층으로 이주할 경우 월세 20만원을 최장 6년 지원하는 '반지하 특정바우처'를 놓고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상층과 반지하와의 월세 차이가 40만원 이상 벌어져 20만원 혜택으론 턱없이 부족해 그냥 반지하에 남으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사업은 실적이 저조해 지원 기간을 2년에서 6년으로 대폭 늘렸다. 하지만 지난해 예산액 대비 집행액은 4%( 4250건)에 불과했다. 올해는 지난 4월까지 3301건이 접수됐는데 그마저 예산액이 지난해 240억원에서 올해 3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지상층으로 이동할 때 최소 보증금이 1억5000만원에 달하지만 정책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월세 지원의 경우도 20만원은 반지하에서 지상층으로 이동하기엔 부족한 금액인 만큼 좀 더 정책의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