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울림' 걱정하는 재계[우보세]

머니투데이 유선일 기자 2024.07.01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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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상법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6.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상법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6.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지 않아야 할 텐데요."

최근 주요 경제단체가 잇달아 발표한 건의·성명을 두고 기업 관계자들이 한 말이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 개정,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상속·증여세제 개편에 대한 얘기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 등은 최근 이 사안과 관련한 기업 의견을 정부·국회에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슈를 하나씩 뜯어보면 이런 입장이 이해된다. 우선 정부가 밸류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상법 개정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식으로 상법을 고쳐 주주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의도는 좋지만 부작용이 예상된다. 배임 우려로 과감한 M&A(인수합병), 미래 먹거리 투자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은 과도하지 않다. 풀어줘도 모자랄 기업 규제를 하나 더 늘리는 꼴이다. 회사와 이사 간 법적 위임 관계가 근간인 현행 법 체계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얘기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ESG 공시 의무화는 필요하다.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급한 도입은 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기업이 많아서다. 최근 경제단체 조사 결과 자산 2조원 이상 125개 상장사의 절반 이상(58.4%)이 2028년 이후 ESG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대기업도 준비가 덜 됐다는 의미다. 중소·중견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 저승사자'인 공정거래위원회조차 공정거래법상 의무 공시 부담을 낮추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상속·증여세제 개편은 20여년 묵은 과제다. 재계는 꾸준히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를 고려한 한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60%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상속세를 내느라 삼성 일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출을 받았다. 넥슨 창업자의 유가족은 그룹 지주사 NXC의 지분으로 상속세를 내 정부가 2대 주주가 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정부도 상속·증여세제 개편 필요성에 공감한다. 최고세율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상속하는 재산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을 피상속인이 받는 금액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안도 오랜 기간 연구했다. 정부가 마련한 세부 대안은 7월 말 발표하는 세법개정안에 담길 예정이다. 이후 결정권은 국회로 넘어간다. 다만 야당이 '부자 감세'와 '세수 결손 우려' 등을 주장하고 있어 개편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찬반이 팽팽한 주요 현안에 대해 재계가 제시하는 방향이 모두 옳다고 볼 수는 없다. 정부·국회의 입장·시각이 기업과 다른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국회·기업이 '경제 활력 제고'라는 동일한 지향점이 있고, 우리 경제를 이끄는 것은 결국 기업이란 점에서 재계의 목소리를 더 무겁게 여길 필요가 있다. 활발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를 바란다.

유선일 기자/사진=유선일 기자유선일 기자/사진=유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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