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사진=MBC
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다. 내가 어릴 적 유행하던 아이템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다면 한 사이클 돌았다, 즉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배우 김희선은 기성 세대다. 그가 과거 드라마 ‘미스터 큐’나 ‘토마토’에서 유행시킨 ‘곱창 밴드’가 다시금 눈에 띈다. 게다가 MZ세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블랙핑크 제니나 아이유가 이를 착용한 모습이 포착됐다. 20여년 전에는 김희선이 그 시대의 제니이자 아이유였다.
시계를 1990년대로 돌려보자. 김희선은 고교 시절인 1992년 ‘고운 얼굴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후 광고업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후에는 SBS ‘인기가요’의 MC를 맡았다. 지금도 내로라하는 K-팝 스타들이 음악순위프로그램의 MC로 나서듯, 당시 신인이자 최연소로 ‘인기가요’의 안방마님 자리를 꿰찬 김희선은 1990년대의 아이콘이었다.
사진='밥이나 한잔해' 방송 영상 캡처
김희선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배우다. 그러면서 김희선은 업계의 불문율을 보기 좋게 깼다. 연예계에서는 ‘결혼은 무덤’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특히 여성 연예인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적용됐다. 결혼과 동시에 외국으로 떠나는 경우도 적잖았다. 그래서 한 때 유명 여성 연예인들의 단골 신랑감이 ‘재미 교포’였다. 실제로 결혼과 동시에 작품 러브콜이 줄고 대중과의 접점이 약화됐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결혼 후 활동 의지를 줄이는 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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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희선은 달랐다. 그는 2007년 락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사업가와 결혼했다. 이후 김희선은 출산과 육아에 전념했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그 사이 김희선은 30대 중반이 됐다. 하지만 그의 컴백작인 사극 ‘신의’의 상대역은 역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이민호였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전설적인 드라마를 남긴 고 김종학 PD가 ‘신의’를 연출하며 김희선을 택했다는 것은 꽤 상징적이었다. 결혼과 출산 같은 개인사가 배우의 커리어를 꺾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여기서 김희선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더 이상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많은 여배우들이 꺼리는 ‘엄마’를 자처했다. 2015년작인 ‘앵그리 맘’이 대표적이다. ‘일진’ 출신 엄마가 딸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이야기였다. 분명 엄마 역이었지만 ‘엄마 같지 않다’는 평이 이어졌다. 극 중 김희선은 교복 연기에 도전했고, 이질감이 없었다. 엄마의 영역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면서도 자신의 건재함은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이후에도 재벌가 며느리로 분한 ‘품위있는 그녀’를 비롯해 ‘앨리스’ 등에서 엄마 역을 맡으며 나잇대의 맞는 역할을 맡아 호평받았다.
'우리, 집', 사진=MBC
결국 김희선의 행보는 ‘드라마 주인공의 변천사’로 볼 수도 있다. 그가 20∼30대일 때는 젊은 선남선녀를 중심에 둔 로맨틱코미디가 대세였다. 세상이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김희선이 40대가 되면서는 ‘엄마’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드라마가 많아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김희선은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김희선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토크쇼를 더했다. tvN ‘밥이나 한잔해’에서 방송인 이수근, 이은지, 그룹 더보이즈 영훈 등과 공동 MC를 맡고 있다. 멤버 중 유일하게 배우다. 하지만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털털함과 솔직함을 담당한다. 사생활을 털어놓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과하지도 않다. 나이를 먹으며 ‘선’을 넘으면 주책이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김희선은 그 선을 잘 지킨다. 엄청난 장점이자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