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간 재산범죄에 '면죄부' 더이상 없다…71년 만에 '헌법불합치'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24.06.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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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리하고 있다./사진=뉴시스이종석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사기·횡령 등 재산 관련 범죄를 저질러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벌을 면해주는 '친족상도례'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법을 재정한지 71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친족간 유대감이나 교류가 과거보다 줄어든 현실을 고려한 판단이다.

헌재는 27일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헌법불합치는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만 즉각 무효화할 경우 법 공백 사태로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어 한시적으로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해당 조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에는 권리행사방해죄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형법에는 절도, 사기와 공갈, 횡령·배임, 장물취득·알선 등 재산 범죄에 이 규정을 준용하도록 돼 있다.

이번 결정으로 해당 조항은 적용이 중지되고 2025년 12월 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한다.



헌재는 "친족상도례 조항은 재산범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일정한 친족관계를 요건으로 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넓은 범위의 친족 간 관계 특성은 일반화하기 어려움에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형사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된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가 독립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경우에는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며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법관이 형 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피해자가 재판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형사 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에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하고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이외의 친족 간에 저지른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정한 형법 328조 2항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친족상도례는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법언을 바탕으로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가족을 이뤄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던 과거에 친족간 재산범죄는 가족 구성원이 해결하도록 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가족 체제가 무너지고 친족간 유대가 옅어지면서 친족상도례 규정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헌재 관계자는 "일률적 형면제로 인해 구체적 사안에서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형해화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을 인정해 입법자에게 입법 개선을 명하는 적용중지 헌법불합치결정을 한 것"이라며 "심판대상 조항의 위헌성 제거와 관련해 입법자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그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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