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ETF 쏠림현상의 진짜 문제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4.06.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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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준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이 한 발언을 두고 자산운용업계에서 구설이 이어진다. 경쟁사가 ETF(상장지수펀드) 수수료를 극도로 낮춘 것에 대해 "(우리는) 껌 팔듯 장사하지 않겠다"거나 또 다른 경쟁사의 ETF 상품 구조를 지적하면서 "고객을 현혹하기 좋다"는 식의 발언들이다.

대형 자산운용사 대표가 공식석상에서 경쟁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이 이례적이기는 하다. 업계에서는 거친 표현방식과 내로남불 아니냐는 비난도 돌아왔다. 이 부회장의 언사가 적절했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ETF 시장의 경쟁이 과열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TF 수수료가 껌 값이 된 현실이나 타사 ETF를 깎아 내리는 것이나 결국에는 차별성 없는 ETF 상품들이 무분별하게 상장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차별성이 없기에 수수료 인하 말고는 내세울 게 없고, 투자자들이 봤을 때 비슷비슷해 보이니 타사 상품의 문제점(사실 대동소이 하기에 문제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을 부각시켜서라도 '우리는 다르다'는 걸 어필하고 싶은 것이다.

ETF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것은 자산운용사들에 분명한 기회지만 반작용도 적지 않다. 이 시장에서 뒤처지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은 퍼스트 무버보다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상품을 고민하고 개발해서 시장을 선도하기보다 잘 나가는 상품과 비슷한 상품을 빨리빨리 만들어서 시장에 내 놓는 게 현재 운용사들의 생존방식이다.



이날 미래에셋운용이 간담회에서 내놓은 상품도 나스닥100 지수를 기초로 커버드콜(현물 매수와 콜옵션 매도로 수익을 얻는 전략)을 활용해 배당금을 매월 분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올해 상장한 ETF 신상품 대부분은 미국 주식, 월배당, 커버드콜 셋 중 하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월배당 ETF는 59개, 설정액은 8조8071억원으로 지난해 말(41개, 3조6172억원) 대비 급격히 증가했다. 월배당 59개 중 42개는 기초자산이 미국이고 21개는 커버드콜 전략을 활용했다.

2차전지가 잘 나갈때는 2차전지 ETF가 범람했고 반도체가 잘 나갈때는 반도체 ETF가 쏟아졌다. 매년 반복되는 쏠림현상이다. 문제는 그때그때 유행에 따라 상품들이 쏠리다보니 유행이 지나면 관리가 소홀해지고 수익률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테마형으로 나온 ETF 중에 순자산 50억원 미만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ETF들이 수두룩하다. 결국 껌 값 논란은 특정 운용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차별화한 상품으로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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