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이해와 존중, 세계를 살아가는 매너

머니투데이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2024.06.2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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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걔네는 다 똑같이 생겼어." 얼마 전 EPL(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토트넘홋스퍼의 우루과이 축구선수 로드리고 벤탄쿠르는 자국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손흥민의 유니폼을 얻어달라는 진행자의 이야기에 손흥민의 사촌 것은 어떠냐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한마디는 이내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인, 더 나가 동양인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인종차별적 언사였기 때문이다. 벤탄쿠르 역시 심각함을 깨닫고 손흥민 선수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EPL은 징계를 검토하고 토트넘은 이와 관련해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다양성, 평등, 포용을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이 뉴스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서특필돼 공분을 샀다.

"걔네는 다 똑같이 생겼어." 그런데 혹여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더라도 이리 문제가 됐을까. 몇 년 전 고등학교 학생들의 블랙페이스(흑인처럼 보이기 위해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것)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한 방송인이 자신의 누리소통망(SNS)에 올리면서 논쟁이 과열되고 논점 또한 본질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있었으나 얼굴을 검게 칠하는 것이 누구에게는 불쾌감 또는 혐오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이 될 수 있음을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애당초 악의가 없었던 데다 문화와 경험이 다른 만큼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



우리끼리는 별일 아닐 수 있는 일이 어디선가는 무례가 되고 심지어 범죄가 된다. 그러나 고려해야 할 매너가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의 활동무대가 더 넓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네이멍구(내몽골) 지역을 여행한 어느 일본인 여행가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가판에서 판매하는 잡화는 대개 일본 물건으로 톈진의 중국 상인이 직접 수입해다 다시 몽골 지역에 수출한다. 상표에 멧돼지를 그려넣은 아즈미 모기향을 파는데 몽골인은 라마교를 신봉해 별문제 없겠지만 회교도는 돼지를 혐오하는 만큼 주의를 요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세계에 살고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외국을 다니면 중국인, 혹은 일본인으로 오해받아 한국인이라고 정정해줘야 했으나 요즘은 도리어 한국인이냐고 먼저 묻는 경우가 많다. 세계 어디를 가나 우리 국민을 만날 수 있고 우리나라 여기저기서도 어렵지 않게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타 문화를 이해하고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비단 나라와 나라 사이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미국 제일의 스포츠는 단연 미식축구다. 2005년 미국 워싱턴DC에 체재할 때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많은 사람이 홈팀 '레드스킨스'(Redskins)의 유니폼을 입고 깃발을 펄럭이며 다녔다. 레드스킨스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가리키는 속어로 팀의 마크는 깃털 장식을 한 원주민의 얼굴이었다. 이웃들의 영향 탓에 나도 있는 동안 그 팀을 응원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스포츠기사를 보는데 '워싱턴풋볼팀'(현 워싱턴커맨더스)이라는 무미건조한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찾아보니 북아메리카 원주민 커뮤니티가 기존 명칭이 원주민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며 교체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전·현직 대통령까지 가세하며 수년간 사회 전반에 걸쳐 찬반논란이 펼쳐졌고 결국 2019년에야 87년간 사용한 팀명을 내렸다. 추신수 선수가 몸담았던 클리블랜드인디언스 역시 얼마 뒤 같은 이유로 이름을 바꿨다.

더 넓은 세상을 살기 위해 더 많은 매너를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는 타자를 존중하는 것이자 스스로 존중받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박물관에서는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이란 조금은 낯선 이름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구한 전통과 현재의 삶을 돌아보며 타 문화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나의 태도를 점검한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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