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연기가 고통스러운 송강호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6.2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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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5년 만의 첫 드라마 도전작 '삼식이 삼촌'서 열연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배우 송강호는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다. 35년의 연기 경력에 출연한 작품만 나열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첫 드라마 출연작인 '삼식이 삼촌'에서도 송강호의 연기력은 역시 엄청났다. 이쯤 되면 연기를 편하게 대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송강호에게 연기란 힘들고 고통스러운 존재다.

디즈니+ 시리즈 '삼식이 삼촌'(극본·연출 신연식)은 전쟁 중에도 하루 세 끼를 반드시 먹인다는 삼식이 삼촌과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엘리트 청년 김산이 혼돈의 시대 속 함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송강호는 '삼식이 삼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하루 세 끼는 굶기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철칙을 가진 박두칠 역을 맡았다. 총 16부작으로 구성된 '삼식이 삼촌'은 지난 19일 최종화를 공개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작품을 마친 송강호는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나 "좋으나 미우나 다 끝나서 홀가분하다"라며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삼식이 삼촌'은 송강호가 1989년 연기를 시작한 이래로 처음 선택한 드라마 작품이다. 송강호는 '삼식이 삼촌'을 선택한 이유로 연출과 극본을 담당한 신연식 감독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신연식 감독을 '동주'라는 영화에서 처음 알았어요. 대중 영화지만 뻔한 흔행 공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을 통해 더욱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신선하고 창의적인 시선이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 '거미집'과 '삼식이 삼촌'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여기에 '삼식이 삼촌'만이 가진 소재와 이야기가 송강호의 마음을 끌었다. 50년도 더 된 시대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를 통해 현대 사회의 욕망을 반추할 수 있다고 설명한 송강호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요시했다고 밝혔다.

"OTT 드라마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요소로 승부를 보는 시대에 이런 소재와 이야기는 모험적이고 위험적인 요소가 있어요. 그러나 창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위험할지라도 도전하고, 결과를 떠나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송강호가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제작 단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고 홍보 단계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작품을 모두 마친 송강호는 "뭐가 다르겠나"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새로운 환경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털어놨다.

"똑같이 연기하고 작업하고 개봉하면 말만 틀릴 뿐이지 시청자와 관객에게 선보이는 과정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다만, 영화는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모든 걸 쏟아낸다면, 드라마는 16부작 동안 천천히 공개하잖아요. 영화는 많은 이야기를 에너제틱하게 전달한다면 드라마는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섬세한 이야기, 인물의 풍성한 모습을 친절하게 전달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아요. 두 달 정도를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출하는 것도 영화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생경했어요."

드라마 환경이 처음인 송강호와 달리 함께 출연한 변요한, 이규형 등은 드라마 환경이 익숙한 배우들이었다. 송강호는 함께한 젊은 배우들을 '거침없다'라고 표현하며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했다.

"'거침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드라마 촬영이 처음이다 보니 위축되기도 하고 긴 호흡을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후배 배우들의 거침없는 연기를 보고 감탄했어요. 드라마 배우들을 거침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송강호 역시 긴 호흡의 드라마를 위해 캐릭터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박두칠이라는 사람이 과연 선인인지, 혹은 악인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며 긴장감을 유발했다.

"박두칠은 나쁜 사람처럼 같기도 하고 따뜻한 감성을 품고 있기도 한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잖아요. 그런 지점들이 어렵지만 매력적으로 와닿았어요. 이런 캐릭터들이 처음부터 명확하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첫 드라마를 마친 송강호는 '영화와 다른 매력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드라마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욕심 역시 변하지 않았다.

"솔직히 힘든 것도 있지만 영화와는 다른 매력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 찍고 싶어요. 꿈꾸는 세상을 가진 삼식이가 김산이라는 자신의 로망을 만난 것처럼, 배우로서 이런 작품을 만난 건 결과를 떠나 또 다른 숙제이자 의욕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모든 예술가들이 누구도 보지 못했던 그림, 음악을 만들고 싶은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위대한 미술가나 작곡가가 사후에 인정받는 경우도 있듯이 저도 계속 두드리면 또 다른 비전이나 태도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결과를 얻지 않을까 싶어요."

송강호의 드라마 출연에 대해 일부는 영화계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송강호는 '산업적으로 인색해진 것 같다'면서도 결국 이를 통해 영화계의 내실이 단단해질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팬데믹이 결정타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대안적인 소통의 방식이었을지 몰라도 오히려 풍성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영화적인 가치는 훼손되지 않고 살아있는 것 같아요. 박찬욱 감독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의 가치를 말했는데 저도 동의해요. 올해에도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가 나왔는데 그런 영화는 계속 나올 것 같아요. 물론, 산업적으로 인색해진 건 느끼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과정이 두세 번 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을 통해 영화계의 내실은 단단해질 거라고 믿어요. 잘 만든 영화는 사랑받는다는 게 입증됐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989년 연극을 시작한 송강호는 어느덧 연기 인생 35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여유가 생길 법도 하지만, 송강호는 여전히 연기를 힘들고 고통스러워했다.

"35년 전과 지금이 똑같에요. 힘든 게 없어지지가 않아요.. 35년을 했으니 편해지고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연기가 즐겁고 재미있다'는 표현을 스스로 하기가 겁날 정도로요. 그건 가식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왜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창조를 한다는 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작업이고, 영원한 숙제이고 딜레마라고 생각해요. 그런 딜레마 속에서 35년을 지나온 것 같은데,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아요."

송강호가 이토록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삼식이 삼촌' 역시 마찬가지 였다. 단순히 플랫폼을 떠나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송강호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가치였다.

"누구나 성공하고 싶을 텐데 그 길이 썩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아요. 성공이 싫다는 게 아니라 왜 쫓아가야하지라는 생각에 나에게 새롭고 의욕이 생기게끔 하는 가치들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드라마든 영화든 그런 작업을 통해 배우로서 숨을 쉬는 순간조차도 가치가 생기게끔 하는 것 같아요. '기생충'으로 큰 상을 받은 뒤 그런 마음이 생긴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데뷔 초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고 자부해요. 결과와 상관없이 저는 늘 그런 길을 선택해 왔다는 자부심이요. 앞으로도 그 길을 가야 할 것 같고 그런 노력을 계속할 것 같아요."

송강호가 자신의 딜레마이자 숙제를 앞으로도 안고 가는 이유는 결국 배우라는 자신의 직업 때문이었다. 자연인 송강호와 동반자적 관계에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송강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품을 통해 소통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배우라는 직업이 내일모레 끝나거나, 1~2년 후에 마감하고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면 목표가 있겠죠. 그런데 배우라는 건 자연인 송강호가 평생 같이 가야 할 동반자라 목표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나의 인생과 끊임없이 갈 수 있을까가 중요한 것 같아요. 중간에 성과가 나온다면 기쁘겠지만, 그게 목표는 아니에요. '삼식이 삼촌'에서도 '피자를 먹고 싶다'는게 진짜 피자를 뜻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만큼 풍요로운 세상을 의미하는 건데 저도 늘 새로운 연기와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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