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팩 갈아 목재로" 한국 낙농업 원로, 재활용 새길 펼쳤다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4.06.2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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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률 1.4%, 알루미늄 막으로 폐기마저 어려워
자원과순환 조합사 '동하' 합성목재 기술 개발 성공
이만재 이사장, EPR분담금 지급대상 확대 등 제안

멸균팩을 잘게 분쇄한 가루(왼쪽)와 톱밥(오른쪽). 멸균팩 가로로 친환경 목재를 만들면 포름알데히드 등 새집증후군도 배출하지 않고, 수명도 길다. 멸균팩을 종이로 재활용하려면 폴리에틸렌과 알루미늄이 결합한 폴리알이 부득이하게 배출돼 폐기가 어렵다. 가루로 분쇄해 목재로 쓰면 폴리알 걱정을 안해도 된다./사진=김성진 기자.멸균팩을 잘게 분쇄한 가루(왼쪽)와 톱밥(오른쪽). 멸균팩 가로로 친환경 목재를 만들면 포름알데히드 등 새집증후군도 배출하지 않고, 수명도 길다. 멸균팩을 종이로 재활용하려면 폴리에틸렌과 알루미늄이 결합한 폴리알이 부득이하게 배출돼 폐기가 어렵다. 가루로 분쇄해 목재로 쓰면 폴리알 걱정을 안해도 된다./사진=김성진 기자.


곱게 갈린 새하얀 가루가 밀가루 같기도, 범죄 영화 속 마약 같기도 했다. 사회적 협동조합 '자원과순환'의 이만재 이사장은 "주스와 두유의 포장재인 멸균팩을 잘게 분쇄한 가루"라 했다. 이 이사장은 2002~2004년 서울우유의 전문경영인(CEO)격인 총괄전무를 지낸 인물로 지금은 대원리사이클링 대표를 맡고 있다.

멸균팩은 보존성이 좋아 최근 사용량이 급격히 늘었지만 재활용은 매우 어렵다. 환경부가 올해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의무화했을 정도다. 이 대표는 "종이로 재활용하려니 어렵지"라며 "생각을 바꾸면 친환경 목재로 쓸 수 있는데, 정부의 발상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멸균팩은 스웨덴 기업 테트라팩이 개발한 포장용기다. 두유, 주스 등을 담은 기다란 사각형 용기가 멸균팩이다. 내부가 폴리에틸렌(PE) 코팅만 돼 있는 일반 우유팩과 달리 멸균팩은 공기를 차단하는 알루미늄 막이 한겹 더 있어 상온에서도 보관할 수 있다. 높은 보존성에 사용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멸균팩 재활용률 및 사용량/그래픽=김현정멸균팩 재활용률 및 사용량/그래픽=김현정
문제는 재활용이다. 멸균팩의 재활용률은 1.4%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멸균팩을 분리배출하지 않아서'라 설명하지만, 재활용 기술 자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게 일선 재활용업계의 목소리다.



우유팩은 물에 넣고 세탁기처럼 원심분리하면 종이가 떨어져 나가 폴리에틸렌만 남는다. 폴리에틸렌은 불에 타기 때문에 연료로 쓰면 된다. 멸균팩은 종이가 떨어지고 알루미늄과 폴리에틸렌이 붙어 폴리알(Poly-Al)이란 물질로 남는다. 폴리알은 녹는점이 1900도로 높아 보통의 소각로(1200~1300도)로 녹지 않고 땅에 묻어도 500년이 넘어야 썩는다. 멸균팩에서 종이를 분리해내도 폴리알을 처리할 수 없어 온전한 의미의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다.

이만재 사회적 협동조합 자원과순환 이사장이자 대원리사이클링 대표. 2002~2004년 서울우유의 CEO격인 총괄전무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멸균팩을 가루로 분쇄하면 재활용도 가능한 친환경 목재를 얻을 수 있으며, 환경부도 멸균팩을 종이로만 재활용하려 할 것이 아니라 새 활용 방법에도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진=김성진 기자.   이만재 사회적 협동조합 자원과순환 이사장이자 대원리사이클링 대표. 2002~2004년 서울우유의 CEO격인 총괄전무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멸균팩을 가루로 분쇄하면 재활용도 가능한 친환경 목재를 얻을 수 있으며, 환경부도 멸균팩을 종이로만 재활용하려 할 것이 아니라 새 활용 방법에도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진=김성진 기자.
이만재 이사장은 멸균팩을 분쇄해 합성목재로 사용하는 기술을 협동조합의 조합사인 동하가 개발했다고 밝혔다. 멸균팩에서 폴리알, 알루미늄을 분리할 필요 없이 통째로 가루를 내, 톱밥처럼 쓰는 기술이다. 기존에 가구와 인테리어 자재의 원료가 되는 합판은 톱밥을 접착제와 섞어 고온 압축해 만들었다. 이때 접착제에서 포름알데히드 등이 나와 눈이 빨개지거나 새집증후군이 생기기도 했다. 멸균팩 분말을 쓰면, 폴리에틸렌이 고온에 녹아 접착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공원과 산책로의 데크길로 쓰이는 방부목도 대체할 수 있다. 멸균팩으로 만든 합판은 수명은 방부목에 비해 길고 폐기하면 다시 분쇄해 재재활용할 수 있다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현재 폐멸균팩을 수거하는 업체들은 제지회사에 납품해야만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분담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이 이사장은 환경부가 관련 규정을 고쳐 합판 제조사에 멸균팩을 납품해도 수거업체가 분담금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멸균팩을 종이로만 재활용할 수 있게 한 규정 탓에 멸균팩의 재활용률도 낮다"며 "멸균팩을 분리배출하는 것은 기본이고, 해마다 늘어나는 멸균팩을 수용하려면 활용방안도 널리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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