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 절벽, 코앞까지 닥쳤다…"규제 해소를" 재계 강조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임찬영 기자, 김도균 기자 2024.06.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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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한국형 고령자 일자리 (下)

편집자주 연금 수령 시점과 정년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노인 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고령자의 일자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일부 대기업 노조는 정년을 연장해달라고 하지만 재계는 정년연장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 '정년 60세'를 법제화 한 것이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 고령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고령자 고용은 필연"...파견·유연근로·인센티브 늘려야
국내 생산연령·고령인구 추이/그래픽=윤선정국내 생산연령·고령인구 추이/그래픽=윤선정


출산율 저하로 생산연령인구 역시 가파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수년 내 현실화 될 노동력 절벽은 고령자 고용의 필요성과 맞물린다. 고령자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기업이 고령자를 채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다.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2년 3674만명에서 2040년 2903만명으로 21%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연평균 2%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려면 2032년까지 89만4000명에 달하는 노동력을 추가로 공급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노동력 공백은 고령자가 일부 메워야 한다. 전문성을 가진 고령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된다.



재계는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고용유연성 확보라고 판단한다. 고용경직성이 높은 한국은 기업 인력 운용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기업이 고령자 채용을 망설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141개국 중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97위였다.

고용경직성을 가로 막는 대표적인 것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다. 한국은 파견법 시행령에 따라 컴퓨터 관련 전문가, 경영·재정 전문가, 특허 전문가 등 32개 업무에서만 파견 업무가 가능하다. 고용부가 고령자 재취업을 위해 마련한 우선고용직종 40개에서조차 파견 가능 직종이 17개에 불과하다. 이는 그만큼 고령자들이 다시 일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재계는 고령자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규제를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3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고령자 계속고용정책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37.7%가 '파견·기간제법 개선'을 정부지원책으로 요구했다.

고령자 고용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인센티브 확대도 대책으로 꼽힌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상 고령자 고용 관련 세액공제는 1인당 400만~1500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고용부의 고령자 고용안정 지원금도 1인당 연간 120만~360만원 수준으로 기업이 고령자를 뽑을 만한 유인이 부족하다. 스페인, 스웨덴, 오스트리아, 폴란드에선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율을 경감해주고 있고 아일랜드는 아예 면제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고령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재교육도 따라야 한다. 산업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고령자의 직업능력 향상은 근로생애 연장과 직결되는 사안인데, 현재는 10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한 재취업서비스만 의무회돼있다. 이는 고령자의 전직에서도 기업 규모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경총은 "재취업지원서비스는 정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고령자들은 퇴직 후 본인이 했던 업무랑 관계없는 곳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국가적인 측면에서 낭비"라며 "고령자들이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정년연장 놓고 줄파업 가능성…"단순 연장, 갈등 부추길 것"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정년 연장 요구는 그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노조가 정년 연장을 중요 의제로 올려놓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기류가 읽힌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파업은 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하루 빨리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24일 재계 등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정년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일부는 파업으로까지 격화할 조짐을 보인다. 파업이 가시권에 든 곳은 현대자동차 노조다. 현대차 노조는 연령별 국민연금 수급과 연계한 정년 연장(최장 64세)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사측과 임협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지난 20일 쟁의(파업)를 결의하고 찬반 투표를 진행해 가결시켰다. 기아 노조도 정년 연장을 내세워 임단협 교섭 시작 전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 이외에도 HD현대 조선 3사 노조, 삼성 11개 계열사가 참여한 삼성그룹노조연대, LG유플러스 2노조 등이 정년 연장을 관철시키려는 태세다.

반면 재계는 정년 연장이 노동시장에 미칠 파급이 큰 만큼 노사정이 함께 모여 논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사측에 각각 다른 조건을 내세우고 있어 실질적으로 어떻게, 얼마만큼 정년을 늘릴지 개별기업이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정부도 상황을 들여다 보고 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오는 27일 의제별 위원회인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를 발족하고 1차 전체회의를 연다.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이 회의에서는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과 고령층 일자리 등을 논의하게 될 예정이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근부회장은 "초고령사회 진입과 인구구조 변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응해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고령 인력 활용이 필요하다는 점에 경영계도 공감한다"면서도 "법정 정년연장은 고용 여력이 있고 고용안정성과 근로조건이 양호한 '공공·대기업·유노조·정규직' 같은 부문에만 그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년 연장은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년연장 혜택을 받게 되는 고령 근로자가 많아질수록 가뜩이나 심각한 청년층 취업난을 악화시켜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경사노위를 포함) 정부·국회가 나서 기업들이 현행 임금 체계를 직무가치와 성과를 반영한 합리적인 임금체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며 "고령자 파견 허용 업무 확대, 고용 유연성 제고, 일하는 방식 다양화 등 고령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 오래 남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조속히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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