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홀로도모르가 주는 교훈

머니투데이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2024.06.2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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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2년반이 지났다. 1주일 만에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던 섣부른 예측은 오판으로 드러났다. 전쟁은 장기전의 수렁에 빠져들었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 우크라이나는 민간인 1만4000명, 군인 7만명 이상 사망하고 난민이 644만명 발생했다.

우크라이나가 군사대국 러시아와 맞서서 잘 버티는 것은 서방의 지원이라는 현실적인 이유와 '홀로도모르'(Holodomor) 등 러시아에 대한 오랜 원한이 국민적 단합과 항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말로 '아사'(餓死)라는 뜻으로 잘못된 인구전망과 산업정책이 낳은 역사적 대기근 사태다. 1920년대 말 소련은 인구증가와 도시화로 인한 식량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농업 집단화를 강제로 추진했다. 그러나 집단화 정책은 농민들을 수탈했고 농민들은 대기근으로 굶어 죽거나 처형됐는데 이때 약 350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잘못된 예측을 기반으로 단기적 목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춘 결과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것이다.



무디스는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성장의 장기적인 리스크는 인구 통계학적 압력이 심화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에 대한 걱정이 많다. 인구문제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는 과정에서 과거 인구감소로 3가지 이득이 있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다. 소위 '3가지 경쟁체제의 해체'라는 것이다. 입시경쟁체제의 해체, 취업경쟁체제의 해체, 주택구입경쟁체제의 해체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총인구가 2028년 5194만명을 피크로 줄어들고 유소년인구(0~14세)가 2017년 672만명에서 2030년 500만명으로 74% 수준으로 감소하니 입시경쟁은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2030년에는 고등학교 학령인구가 2017년 대비 77% 수준, 대학교 학령인구는 69%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여 입학정원보다 수험생이 적은 입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도 2020년대엔 매년 평균적으로 33만명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일자리부족이 아니라 사람부족 현상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2.1%고 앞으로 점점 인구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소위 '주택난'은 없어질 것이라는 등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잘못된 예측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더욱 치열한 서울 및 수도권 대학으로의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 '벚꽃 피는 순서로' 지방대학이 무너질 경우 서울로의 유입은 가속화할 것이다. 이것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청년실업이라는 말은 없어지겠지만 정말 '가고 싶은' 직장의 취업경쟁률은 더욱 치열해져서 정규직 자리는 더욱 귀하게 될 것이다. 1~2인가구에 대한 반영이 미흡한 주택보급률로는 주택난을 설명할 수 없다. 서울 인구가 2015년 이후 7년간 943만명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주택보급률은 13년 만에 최저치로 93.7%를 기록했다. 주택수는 겨우 1.6% 늘었지만 1인가구는 무려 39%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 좋은 지역, 더 좋은 집에 대한 욕구를 인구감소로 해결할 수 없다. 잘못된 예측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온다. 인구감소는 단지 사람 숫자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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