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에루샤는 불황에도 굳건할까

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06.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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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엔데믹 후 전 세계에 걸친 인플레이션과 높은 이자율로 가처분소득이 급격히 줄면서 명품시장의 성장률은 그야말로 급락했다.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21년 31.8%, 2022년 20.3%에 달했던 세계 럭셔리 시장 성장률이 지난해엔 3.7%에 그친 것이다. 그로 인해 주식시장에서도 럭셔리 관련주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LVMH가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주요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 흐름은 다소 비관적이다.

참고로, 금년 6월 24일 기준, 전 세계 럭셔리 회사의 시가총액은 LVMH가 3830억 달러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에르메스(2420억 달러), 디올(1310억 달러), 에실로룩소티카(1010억 달러), 리치몬드(900억 달러), 케링(410억 달러), 타이탄(360억 달러), 프라다(180억 달러), 몽클레르(17억 달러), 판도라(120억 달러) 순으로 top 10을 기록하고 있다. 명품회사 중 유일한 비상장기업인 샤넬은 여러 지표가 에르메스보다 좋다.



그러나 럭셔리 시장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고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소위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는 작년에도 세계 각국에서 고른 성장을 보이며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에르메스는 2022년 116억 유로에서 2023년에는 134억 유로로 16% 성장했다. 에르메스는 이런 성과를 반영해 전 세계 2만여 직원에게 특별 보너스까지 지급했다. 주주에게도 주당 10유로를 특별 배당했다. 금년 1분기에도 애널리스트들의 예상치를 상회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샤넬도 3년 연속 성장세를 보이며, 2023년 매출 2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16% 증가하면서 역대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매출의 25%로 매우 높다. 샤넬의 오너 가문은 최근 3년에만 124억 달러에 달하는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코 샤넬과 함께 창업한 베르트하이머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LVMH도 시장의 예상을 깨고 지난해 매출 861억 유로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2022년보다 13% 늘어난 것이다.

반면, 구찌, 버버리, 베르사체, 마이클코어스, 페라가모 등 중산층 소비자 비중이 높은 브랜드들은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구찌의 모기업 케링은 최근 2년 동안 정체를 보이다, 금년 상반기에는 10% 이상 매출이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45%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분석가들의 예상치를 훨씬 넘어서는 수치다. 버버리는 주가가 최근 1년 동안 50% 정도 하락했으며, 마이클코어스는 작년에 coach의 모기업인 태피스트리에 매각되는 수모도 겪었다.


컨설팅회사 Mazars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럭셔리 브랜드의 소비는 대부분 부유한 MZ세대가 주도했다. 전자상거래와 실시간 소셜 미디어 트렌드 덕분에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은 젊은 층이 고급 핸드백, 신발, 주얼리 소비를 주도했다. 그러나 2030년까지 전 세계 명품 구매의 8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MZ세대가 점차 지갑을 닫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다수가 팬데믹 기간에 저축한 돈은 고갈되고, 인플레이션이 길어지면서 구매력이 크게 상실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구매했던 명품을 리셀(recell) 시장에 내다 팔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하이엔드 명품은 여전히 잘 팔리지만,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매스티지(대중 명품)의 실적은 매우 저조하다. 명품 소비가 감소하는 시기에는 소비자들은 보다 확고한 브랜드에 끌리게 된다. 그야말로 진검 승부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불황기에 비싼 명품이 잘 팔리는 이유를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로 해석한다.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 일반적인 경제법칙과는 달리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미국 경제학자 베블런은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자신의 부와 명성을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비싼 물건을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특수한 계층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베블런 효과라는 경제학 용어로 자리를 잡으며, 소비로 자신을 규정하고 과시하려는 심리상태로 정의되고 있다.

한편, 미국 USC대학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교수는 최근 발간한 '야망계급론'이란 그의 저서에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과시적 소비에 열중하는 유한계급이 존재한다는 베블런의 이론으로는 현재 부유층의 소비형태나 의식구조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지적하며, 유한계급을 대체할 개념으로 야망계급을 제시했다. 야망계급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 물질적 소비 대신 남들 눈에 쉽게 띄지 않는 비과시적, 문화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고 대물림하는 새로운 지배계급을 의미한다. 전체적인 경제 수준의 향상으로 과시적인 물질적 소비가 더 이상 지배계급의 전유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차별화하는 전략을 택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고가 제품이나 명품을 소유하는 것에서 벗어나 고가의 교육, 의료 혜택, 유기농 식품, 고급 스포츠, 환경단체 후원 등 다양한 것들이 모여 야망계급의 정체성을 이루며, 이를 통해 과거 소비 위주의 유한계급과는 달리 '도덕의식과 권리의식'을 강조하며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브스는 "불황기에도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가 성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클래식 다자인, 세심한 생산, 재고관리에 초점을 맞추며 경기 침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소득 고객층이 소비를 늘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하버드대학 문영미 교수는 명품의 고객들은 대부분 수많은 경쟁 브랜드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브랜드에 대한 강한 애착을 버리지 않는 '브랜드 로열리스트'라고 하였다. 소비자의 극소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충성도가 워낙 높아서 가격과 상관없이 브랜드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럭셔리 제품에 대한 소비를 단지 부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들의 기업가치와 순이익은 상상을 초월하고, 불황이 와도 굳건하다. 6월 24일 현재 전 세계 최고의 부자는 LVMH의 아르노 회장이고, 기업가치는 532조 원으로 삼성전자보다도 높다. 루이비통 1852년, 에르메스 1837년, 샤넬은 1909년에 설립되어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모든 기업들이 꿈꾸는 지속가능 경영을 100년을 넘어 200년 가까이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떤 지름길도 택하지 않는다." 는 에르메스 장인들의 이야기처럼, 그들의 성공에는 AI 시대에도 변치 않는 우보천리(牛步千里), 마보십리(馬步十里)의 진정한 장인정신이 있는 것이다.

"최고의 소나무를 심어도, 진정한 멋을 갖추고 운치를 내려면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뿌리를 내리고, 새순이 나고, 그 밑에 있는 바위에 이끼가 앉으려면 이 정도의 시간은 걸린다. 그러니 절대 돈으로 시간의 무게를 사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 최대 명품 핸드백 제조회사인 시몬느 박은관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적인 명품을 가질 때가 됐다. 은근과 끈기의 DNA를 가진 대한민국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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