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과거에 갇힌 워싱턴과 타노스의 손가락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24.06.24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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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사진=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사진=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느 일방이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는 경우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63년 만에 사실상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며 한반도가 태풍전야다. 북한은 조약 체결 직후인 20일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든든한 형님을 등에 업은 '자신감'을 내보였다.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넘은 것은 최근 2주 사이에만 세 번이다. 향후 한반도에 불어닥칠 후폭풍의 전조일까. '똥풍선'(오물풍선)은 애교였다.



한국은 그간 기피했던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며 즉시 맞불을 놨다. 미국은 러시아를 북한과 나란히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도록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북러 조약에 유사 시 러시아가 자동 군사개입 한다는 문구는 없다. 74년 전 한국전쟁의 비극이 자동 소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트라우마 탓일까.

푸틴 대통령은 이번 평양 방문 중 '북한은 자체 방위력을 갖출 권리가 있다'며 북한의 핵 프로그램 지지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핵에 대한 명확한 언급 없이 사실상 핵을 용인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사망 선고이자 냉전 2.0의 서막이다. 미국 내부에서 먼저 한국의 핵무장론이 차악으로 거론될 정도다.



미국 싱크탱크 카토 연구소 소속 더그 밴도우 연구원은 21일(현지시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미국이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북한 핵 전쟁에 개입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바보 같다는 사실을 한국인들도 깨닫고 있다"면서 한국, 일본의 핵무장을 인정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좋지 않은 방안이지만, 미국과 미국 시민이 북한에 인질로 잡히는 것보다는 낫다"며 대북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스스로 완전한 비핵화에 성공한 국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뿐,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무장을 해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992년 핵무기 1~3개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했던 북한은 30여년이 지난 현재 핵무기 수십 발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북한은 복수의 핵 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술 핵무기로 미국 도시까지 겨냥할 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과 외교가 단절된 북한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귀중한 협상카드가 됐다. 구식 무기를 대가로 석유와 식량을 얻고 핵을 완성할 마지막 기술적 장애물을 넘을 절호의 찬스다. 러시아가 북한에 핵 완성을 위한 핵심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북한이 해킹을 통해 핵 개발자금을 확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푸틴과 김정은의 브로맨스는 한반도와 유럽은 물론 한국전쟁 이후 미국 안보에도 가장 큰 위협이 됐다.


푸틴은 김정은에게 어느 선까지 기술을 넘겨줄까. 중국의 눈치를 봐서 일정 선을 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이미 타노스(마블 영화 '어벤저스 인피니티워'에서 손가락 튕김 한 번에 인류의 절반을 사라지게 한 악당)의 길을 걷고 있는 푸틴이다. 이란도 푸틴의 손가락을 예의주시한다. 러시아에 드론을 공급하는 이란은 핵무기 재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얻을 수 있는 첨단 원심분리기를 지하시설 깊숙이 설치했으며, 현재 핵 무기 3개 분량의 농축 우라늄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만약 북한이 성공한다면 다음 차례는 이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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