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화무십일홍 '새벽 호랑이'

머니투데이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2024.06.24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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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새벽 호랑이'란 세력을 잃고 물러나게 된 신세를, '계집 둘 가진 놈의 창자는 호랑이도 안 먹는다'란 본처와 첩을 데리고 사는 사람은 몹시 속이 썩어 편할 날이 없음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란 철없이 함부로 덤빔을, '호랑이 담배 피울 적'이란 지금과는 형편이 다른 아주 까마득한 옛날을, '범 새끼 치겠다'란 김을 매지 않아 논밭에 풀이 무성함을 빗대 이르는 말이다.

범은 어느 곳에 살아도 최상위 포식자(捕食者)의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는 강력한 맹수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이동해 급습하는 잠행 특성은 호랑이 최고의 사냥 무기다. 호랑이는 자신의 영역을 다른 동물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무를 긁어서 표시하거나 배설물을 나무에 뿌린다. 그리고 물론 먹잇감의 숨통을 끊는 것은 송곳니고 앞발은 먹잇감의 급소를 강타한다. 또 물을 좋아하기도 해 자주 멱을 감는다.



호랑이(虎狼-, tiger)를 순우리말인 '범', 또는 어린이 말인 '어흥이'라 부르고 셋 모두 다 표준어로 삼는다. 호랑이는 일본제국이 호환(虎患)을 예방한다는 '호랑이토벌'과 6·25전쟁 탓에 남한에서는 멸종되고 말았다.

호랑이는 식육목, 고양잇과 포유류로 그중에서 최상의 포식자고 삼림과 갈대밭, 바위가 많은 곳, 물가의 우거진 숲을 좋아한다. 호랑이는 시베리아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전 아시아에 넓게 퍼져 산다. 무엇보다 몸에 있는 100여개의 무늬는 서식처의 얼룩진 그림자나 긴 풀줄기를 닮아서 몸을 위장(僞裝, 거짓 꾸밈)하기에 알맞다.



우리나라 범은 세계에 생존하는 6아종(亞種, subspecies) 중에서 '시베리아호랑이'(Siberian tiger)에 속하고 아무르지역·만주·중국 북부에 살며 북한에 약 7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한다. 2005년 호랑이 개체수 조사(census)에서 아무르지역에 아직 450~500마리가 사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하니 남한에 우리 호랑이가 없을 뿐이지 다행히 그 씨가 마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종은 생물분류체계에서 종(species) 아래에 있는 계급으로 교배가 가능하고 서로 공통된 많은 형질을 지니고 있으며 생식적인 격리가 오래되면 장래에 별개의 종으로 분화할 가능성이 있다.

호랑이는 우리가 가장 우러러보는 용맹하고 날쌘 영물로 민화나 민담의 단골이었고 서울올림픽 마스코트까지 더없이 사랑받는 산신령이며 건국신화에도 등장하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호시탐탐(虎視眈眈)이란 호랑이가 공격이나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모양을, 우보호시(牛步虎視)란 호랑이처럼 예리한 눈빛을 하되 소처럼 우직한 행보로 길을 감을, 용호상박(龍虎相搏)이란 '용과 범이 서로 싸운다'는 뜻으로 강자(强者)끼리 서로 싸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호사유피(虎死留皮)요 인사유명(人死留名)이란 사람은 뜻있는 흔적을 남겨 그 이름을 널리 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읽은 호환이 떠오른다. 또 내 어릴 적에 사랑방에도 호피 한 장이 있었지.


호랑이(Panthera tigris)는 6종의 아종이 있다. 1)수마트라호랑이(P.t.sumatrae)는 인도네시아산이고 2)인도호랑이(P.t.tigris)는 '벵골호랑이'라고도 하는데 부탄·네팔·인도산이며 3)시베리아호랑이(P.t.altaica)는 '아무르호랑이' '한국호랑이' '백두산호랑이'라고도 하며 범 중에서 가장 크고 현재 백두산 일대와 중국 동북부지역에 50여마리가 서식한다. 1996년 환경부가 남한에서 멸종한 것으로 발표했고 2012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고 말았다. 4)말레이호랑이(P.t.jacksoni)는 말레이시아에 살고 5)아모이호랑이(P.t.amoyensis)는 '남중국호랑이'라고도 불리고 양쯔강 이남에 살며 6)인도차이나호랑이(P.t.corbetti)는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에 산다.(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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