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대기업 전유물 아니다…벤처가 선택한 특별한 무기는

머니투데이 정기종 기자, 김도윤 기자, 홍효진 기자 2024.06.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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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K-바이오, 글로벌 시장 중심으로 (下)

편집자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 잇따른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직접 공략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연간 매출액 1조원을 넘는 토종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등장도 눈앞이다. 지금은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중요한 시기다.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할 때다.

'얀센·머크' 글로벌 빅파마와 맞손…K-바이오 혁신신약 존재감↑
K-바이오, 대기업 전유물 아니다…벤처가 선택한 특별한 무기는


국산 바이오 기술의 글로벌 영역 확장은 대형사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미국 허가 문턱을 넘은 국산 신약 대부분은 대체로 국내 대형사를 통해 이뤄졌지만, 기술력 담금질을 해온 중소 바이오 벤처의 성과 역시 가시권에 있다. 이들은 차별화된 독자 플랫폼 기술을 앞세워 얀센과 머크, 사노피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의 파트너십으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답게 가장 엄격한 의약품 허가 기준을 보유한 국가다. 미국 허가는 곧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기술력을 입증했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한 국산신약은 총 10개 품목이다. 2003년 LG화학 항생제 '팩티브'를 시작으로 연초 휴젤의 주름개선용 보툴리눔 톡신 '레티보'까지 허가 품목을 늘려왔다.



미국에서 허가받은 국산 신약 개발사는 동아에스티와 SK케미칼, SK바이오팜, 대웅제약, 한미약품, 셀트리온, GC녹십자, 휴젤 등 국내 대형사 또는 그 계열사들이다. 미국에서 의약품을 허가받으려면 양질의 기술력은 물론 상용화까지 이어갈 수 있는 자금력이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이오 벤처 역시 뒤지지 않는 성과를 쌓아왔다. 자금력이 부족한 바이오 벤처가 선택한 방식은 기술수출이다. 초기 개발 단계 신약 후보물질이나 플랫폼 기술에 대한 권리를 파트너사에 이전해 수익을 창출하고, 상용화 이후 판매액의 일부를 로열티로 수령하는 구조다.



신약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상용화까지 최소 10년의 개발 기간과 수조원의 개발비용이 투입된다. 이를 감안하면 기술수출은 국산 기술 경쟁력을 부각하기 위한 현시점 최적의 모델이라는 평가다. 특히 글로벌 대형사로 기술이전에 성공할 경우, 협업 과정에서 선진 제약사의 기술 노하우를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내 제약 업계에서 글로벌 대형사와 대표적인 협업 사례는 유한양행의 항암신약 후보물질 '레이저티닙'이다. 앞서 1조4000억원 규모에 얀센에 기술수출 한 뒤,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로 FDA 허가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국산 신약 파이프라인 기술수출의 중심축은 단연 바이오 벤처다. 국산 기술수출 규모가 2018년 5조원대에서 2021년 13조원대로 고속성장하는 동안 그 비중과 규모 측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 바이오 벤처 주무기는 플랫폼 기술이다. 특정 적응증을 대상으로 한 단일 후보물질이 아닌 약물의 체내 전달 효율을 높이는 등 플랫폼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은 계약 형태에 따라 복수의 파트너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알테오젠 (279,500원 ▼5,000 -1.76%)에이비엘바이오 (22,600원 ▲450 +2.03%), 리가켐바이오 (71,200원 ▼600 -0.84%) 등이 꼽힌다. 특히 이들은 암을 비롯해 난치성 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신약 파트너로 낙점되면서 기술력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알테오젠은 '정맥(IV)→피하(SC)' 주사 변경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2019년부터 글로벌 10대 제약사 2곳을 포함한 4개 기업과 7조원 이상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주목받는 계약은 전세계 매출 1위 의약품 '키트루다'(항암제)를 보유한 머크(MSD)와의 계약이다. 현재 머크는 알테오젠 기술을 활용해 정맥주사 제형인 키트루다를 피하주사로 변경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오는 9월 임상 종료 예정이다. 성공 여부에 따라 국산 기술이 더해진 글로벌 블록버스터 항암제 탄생이 가능한 상황이다.

리가켐바이오는 최근 차세대 항암 신약으로 부상한 항체-약물접합(ADC) 분야 강자로 꼽힌다. 2015년부터 독자 플랫폼과 이를 활용한 신약 후보물질 등 누적 10건의 기술수출을 성사했다. 국내 최다 기술수출 건수에도 글로벌 대형사와의 계약 부재가 약점으로 지목받았지만, 지난해 12월 얀센과 2조2000억원대 계약에 성공하며 기술 가치를 입증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항원 2개에 동시 작용하는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을 보유했다. 약물의 뇌내 전달성을 높이는 '그랩바디-B' 플랫폼을 적용한 파킨슨병 치료제 후보물질 'ABL301'을 지난 2022년 사노피에 1조4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같은 기술을 항암 영역에 적용한 '그랩바디-T' 플랫폼 관련 파이프라인 역시 최근 BMS와 병용 임상을 위해 맞손을 잡았다. 더 나아가 내달 이중항체와 ADC를 접목한 신규 파이프라인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자본력이 있는 기업과 제한적인 기업의 전략은 달라야 하는데, 자본력이 부족한 벤처는 기술수출이 가능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사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단순 후보물질을 넘어 실제 빅파마의 신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며, 최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알테오젠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과 협업·정부 지원 중요" K-바이오 도약을 위한 조건
K-바이오, 대기업 전유물 아니다…벤처가 선택한 특별한 무기는
"이제 국내 바이오도 임상 1상은 많이 하니까 후기 임상과 관련한 노하우를 쌓아야 하고, 이를 위해 자본시장이 좀 더 뒷받침을 해주면 좋겠습니다."(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

에이비엘바이오는 국내 대표 신약 개발 바이오 벤처로 꼽힌다. 이미 1조원 이상 규모의 글로벌 기술이전에 성공하며 일정 부분 흑자 구조를 갖췄다. 다양한 이중항체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해 성장 잠재력이 높단 평가다.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도약하려면 임상 2상 또는 3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연구 역량이 필요하고, 후기 임상에 대한 도전이 많아지려면 결국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원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또 "'미투 드럭'(me-too drug, 프로토타입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해 기존 약물과 유사한 약물)이 아니라 실제 글로벌 기업의 파이프라인과 임상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디자인을 갖춘 선도물질이 필요하다"며 "비임상 단계에선 효능뿐 아니라 PK(약동학)와 독성 등 모든 분야에서 베스트인클래스가 될 수 있는 약물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 "바이오 벤처는 차별화된 기술력에 집중하고 빅파마 노하우 습득해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역량은 아직 글로벌 빅파마(대형제약사)에 미치지 못한다. 주요 제약사는 국내 시장에서 신약보다 제네릭(복제약) 위주로 성장한 경향이 있고, 바이오 벤처 대다수는 영세한 규모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이 때문에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벤처는 우선 기술이전에 집중하는 동시에 글로벌 빅파마가 혹할 만한 차별화된 기술을 확보해 지속 가능한 경영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미 자금력을 보유한 주요 제약사는 자체적인 신약 개발과 글로벌 기술수출 또는 공동개발을 병행하는 전략이 주효할 것이란 진단이다.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이사는 "국내 바이오 중 알테오젠의 제형 변경 기술이나 펩트론의 약효 지속 시간 증대 기술처럼 빅파마의 신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차별화된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빅파마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기술을 개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정규 유안타인베스트먼트 이사는 "국내에서도 상위 제약사가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글로벌 빅파마와 붙을 수 있는 큰 몸집을 갖추는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최대 제약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단 마음가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바이오 벤처는 우선 기술수출을 통해 수익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수출뿐 아니라 공동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방식으로 글로벌 빅파마의 역량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며 "기술수출 이후에도 파트너가 진행하는 임상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 "바이오, 글로벌에서 통한다…끊임없고 빠른 지원이 중요"

K-바이오, 대기업 전유물 아니다…벤처가 선택한 특별한 무기는
바이오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산업인 만큼 정부의 효율적인 지원이 중요하단 의견도 줄을 이었다. 특히 바이오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인 데다 최근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어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기란 분석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바이오 산업은 기술이전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아직 임상 3상을 통한 자체 개발 측면에선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분명히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대규모 임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로슈나 노바티스, 베링거인겔하임 등과 만났는데 한국의 바이오 기술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하더라"며 "정부가 바이오를 지원하기 위한 대형 펀드를 고민한다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현재 시장 상황에 맞는 구조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가 발굴한 신약 후보물질 중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파이프라인이 있다면 보다 빠르게 임상에 진입할 수 있게 적절한 자금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단 조언도 나온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더 성과를 내려면 R&D(연구개발)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임상을 빨리 진행해 신약 후보물질의 효능을 증명하는 게 중요한데 국내 바이오는 해외에 비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나 자본시장의 도움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스스로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 이와 관련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어떤 치료제든 부작용이 없으면서 효능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바이오 기업은 투자를 받겠다고 무조건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확률로 얘기해야 한다"며 "시장이나 투자자가 오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 막상 실패한 뒤 나몰라라 하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또 "바이오는 피해자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산업 중 하나라 더 신경써야 한다"며 "파이프라인 하나로 외줄 타기를 하지 말고 다양한 협업을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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