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인구 문제, 낙법이 필요하다

머니투데이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2024.06.24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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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인구 관련 많은 문제는 상당부분 예상이 가능하다. 사실 굳이 예상이라고 하기에는 멋쩍은데 태어나는 시점에 앞으로 상당기간의 인구가 사실상 확정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구학적 문제는 그저 시간이 흐르면 벌어질 '시차' 문제다. 연초 2024학년도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전년도 40만6000명에서 35만7000명대로 급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는 2017년 출생자 수가 전년 대비 급감했을 때 이미 확정된 사실이다. 이와 같이 저출산·고령화 관련 대부분의 문제는 '오래된 미래'다.

2024년 초등학생은 246만명, 중·고등학생을 합친 총학생 수는 513만명이다. 교육개발원 추계에 따르면 2029년 초등학생은 173만명으로, 총학생 수는 428만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확정된 숫자가 아니니 '추계'(estimate)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2029년 초등학교 입학생은 2022년생이니 이것도 사실 분석할 필요도 없는 단순한 산수의 영역이다.



어쩌면 우리는 단순한 산수의 영역에서 너무 즉자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출산율 하락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확정된 미래에 대한 구체적 준비를 서두르는 것이 더 긴급하다. 어떤 경우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당장 내년과 내후년에도 나라와 경제는 돌아간다는 현실을 직면할 때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시급하게 낙법을 준비할 때인 것 같다. 서서히 문화가 바뀌고 개인들의 선택이 달라지면서 출산율이 상승전환하면 먼 미래는 지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혼과 저출산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트렌드가 된 세상에서 출산율 관련 대책들이 당장 효과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당장은 그 먼 미래가 오기 전에 불가피하게 다가올, 이미 확정된 축소환경에서 시스템 충격을 최소화할 낙법이 필요하다. 후퇴가 질서 있어야 병력도 보존되고 다시 진격이 가능한 법이다.



지금 논란이 되는 분만 가능 병의원의 사례를 살펴보자. 전국 분만 가능 병의원은 463곳으로 10년 새 34.4% 감소했으며 분만병원 없는 곳이 전국 250개 시군구 중 72곳에 달한다고 지난 6월4일 SBS에서 보도했다. 아마도 전국 모든 시군구에서 분만실을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무너지는 곳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15~49세 여성으로 정의되는 가임기 여성인구 감소는 이미 확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전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 최소 수준에 대한 합의 형성과 정밀한 계획이 필요해 보인다. 분만병원과 필수의료시설, 편의시설 및 상점과 학교 등 모든 시설은 규모의 경제가 확보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수준에서 제공돼야 한다. 대안으로 거점 분만병원과 빠른 이송체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거점들을 어떻게 연계하느냐다.

"인구문제는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어떤 면에서 인구는 삶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다. 인구는 기술혁신, 경제발전, 신앙과 이념의 변화 같은 원인 요소와 나란히 이해해야 할 사안이지만 인구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폴 몰런드, '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 인구구조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지만 모든 것이 인구로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결국 결정된 인구구조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의 효율성과 시스템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체계적 준비의 정도가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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