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배출권거래제, 우리 산업을 끌고 밀고

머니투데이 김준동 법무법인 세종고문· 前대한상의 부회장 2024.06.20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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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동 고문(법무법인 세종)김준동 고문(법무법인 세종)


배출권거래제는 시장기능을 활용해 온실가스를 효율적으로 줄여보자는 제도다. 우리는 제조업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일본보다 앞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도입했다. 2030년 NDC(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가야 할 길이라면 거래제는 잘 굴러가야 한다. 거래제에 참여한 약 700개 기업이 우리나라 온실가스의 70% 이상 배출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의 경험을 토대로 2026년부터는 제4기에 본격 진입한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탄소발생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력분야 로드맵에서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내용의 초안을 발표했다. 후속으로 배출권거래제가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지만 가격과 기술이라는 2개의 창(窓)으로 들여다본다.

먼저 배출권 가격이 수요-공급의 원활한 시그널로 작동하느냐다. 일반적으로 배출권 가격결정의 변수는 에너지 가격(특히 석탄 대체재로서 천연가스)과 정치적 리스크(어떤 정권이냐) 그리고 저탄소 혁신기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직접 개입이 절대적이다. 대부분 공짜로 받는 무상할당이라 유럽처럼 이월이 자유롭지 않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다.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기업들의 참여동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격 안정성과 예측성이 중요하다. 유럽연합(EU) 배출권 시장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구멍가게 수준이고 변동성도 크다. 현재 코스닥 시장에도 유럽 배출권 시장을 대상으로 한 ETF(상장지수펀드) 상품들이 나와 있지만 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은 없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런 취지에서 가격상하한제 도입도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상할당을 꾸준히 늘려나가되 기업들의 기후변화 경쟁력을 보면서 가격의 시그널 기능을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은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저탄소 혁신기술 개발이다. 이는 국내 산업의 구조고도화와 미래 글로벌 시장의 선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파괴적인 혁신기술(Disruptive Technology)에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초이론에서 생산기술까지 10년, 20년은 돼야 나온다. AI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전력수요(탄소배출 증가)와 저탄소 혁신기술 개발 간의 간극(Chasm)에는 정부의 인내심과 꾸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미래 기술개발을 위해 산업계가 요구하고 정부도 약속한 탄소차액계약제도 시행은 빠를수록 좋다.

현실적으로 거래제는 환경, 산업, 에너지, 금융 등 다양한 부문과 연결돼 있어 부처간 정책의 시너지가 요구된다. 이 점에서 EU의 거래제와 CBAM(탄소국경조정제) 연계는 좋은 예다. 앞에서는 저탄소로 자국 기업을 끌고 뒤에서는 외국 기업에 그 부담을 전가하는 정책의 창의성은 거의 예술에 가깝다. EU의 산업과 우리나라의 산업은 많이 다르다. EU가 철저히 자국 산업 우선주의로 가듯이 우리도 산업을 끌고 미는 독한 의지(Korea perspective)를 보여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은 인류 삶의 질 문제지만 산업경쟁력은 국가 생존의 문제다. (김준동 법무법인 세종고문· 前 대한상의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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