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침체 일시적" VS "현실 직시해야"…전기차 시장 '캐즘' 논란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2024.06.19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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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주요 ETF 및 종목 올해 주가 하락률/그래픽=김다나2차전지 주요 ETF 및 종목 올해 주가 하락률/그래픽=김다나


증권가에서 전기차 시장을 둘러 싼 '캐즘'(Chasm) 논란이 뜨겁다. 캐즘이란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초기 수용자)에서 얼리머저리티(early majority, 조기 다수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수요 둔화 현상을 의미한다.

최근 전기차와 2차전지 시장의 침체가 캐즘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전세계 정책적·구조적 변화로 인해 수요 둔화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개인은 장기 침체보다 캐즘에 무게를 두고 2차전지 저가 매수에 나서는 중인데 전망이 갈리는 만큼 변동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 상장한 2차전지 ETF(상장지수펀드) 가운데 순자산총액이 1조2300억원으로 가장 큰 상품인 'TIGER 2차전지테마 (21,270원 ▲185 +0.88%)'는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주가가 17.72% 하락했다. 또 다른 대표 상품인 'KODEX 2차전지산업 (18,070원 ▲75 +0.42%)' 역시 같은 기간 19.03% 손실을 기록했다.

ETF 주요 구성종목인 2차전지 기업들의 주가 부진이 이어지면서 ETF 수익률도 악화했다. 지난해 상반기 증시를 이끌었던 2차전지 주요 종목들은 대부분 지난해 6~7월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2차전지 대장주인 LG에너지솔루션 (326,500원 ▼1,500 -0.46%)은 지난해 고점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화제의 종목이었던 에코프로비엠 (183,000원 ▲5,000 +2.81%)에코프로 (90,100원 ▲500 +0.56%)는 고점 대비 60% 이상 조정을 받았다.



가장 큰 원인은 2차전지의 전방 산업인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였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1407만대로 전년 대비 33.5% 증가했다. 여전히 높은 성장률이지만 2021년(109%), 2022년(56.9%)과 비교하면 성장세는 점차 둔화하고 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6.6%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고금리로 인한 소비침체와 각국의 보조금 축소, 팬데믹 기저효과 등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 전기차의 시장 침투율은 약 18%로 여전히 성장성은 열려있다. 하지만 초기 시장에서 빠른 성장률은 대부분 얼리어답터에 의한 것으로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선 대중 시장 공략이 필수적이다. 다수의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과 충전소 등 전기차 인프라 확대가 동반돼야 하는데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전기차가 주류 시장으로 성장하기까지 캐즘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가 단순한 캐즘에 불과하다면 최근의 주가 하락은 저가 매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증권가 전문가들 중에서도 긍정론자들은 하반기부터 업황 반등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의 주가 하락을 비중확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권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리튬·니켈 가격을 감안할 경우 하반기부터 전기차 가격은 보합 내지 상승이 예상되며 판매량은 하반기로 갈수록 신차 출시 및 메탈 가격 하락 중단에 따른 재고축적 수요로 인해 증가할 것"이라며 "시장 기대치가 점차 낮아지고 있어 역으로 하반기 몇 가지 변수들이 우호적으로 변화된다면 실적 컨센서스(시장 전망치 평균) 상회 및 주가 반등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캐즘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별로 차별화가 나타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최태용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에는 전방 고객사 동향에 따른 국내 셀 제조사의 차별적인 주가 흐름이 예상된다"며 "업황 둔화를 상쇄할 체력이 있는 레거시 OEM(전통 완성차 업체) 고객사가 부각될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은 삼성SDI를 업종 최선호주로 제시했다.

개인 투자자들도 최근 2차전지 기업들의 주가 하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고 있다. 최근 일주일 간(6월11~17일) 개인 순매수 상위 종목을 살펴보면 7~10위 종목이 에코프로비엠(867억원, 이하 개인 순매수 금액) 삼성SDI(698억원) 에코프로머티(611억원) LG에너지솔루션(594억원) 등 2차전지 업종이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각국의 정책 변화와 구조적 수요 둔화로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성장성을 미리 주가에 반영한 만큼 실적 성장이 이어지더라도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하락에 의한 주가 하락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EU(유럽연합)에서는 지난해부터 주요 국가들의 전기차 보조금이 축소되거나 폐지됐고 강력한 EURO7(배기가스 규제)의 도입도 연기됐다"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감속을 유발하는 요인은 성장 곡선 상에서의 자연스러운 조정인 캐즘이 아니라 정책 후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양극재 등 일부 배터리 관련 업체들의 과도한 가치 평가는 글로벌 정책 지원 확대가 재개되더라도 정당화하기 어렵다"며 "캐즘으로 치부하지 말고 정책 후퇴를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원은 지난 17일 리포트를 통해 에코프로비엠의 목표주가를 기존 20만원에서 15만원으로 하향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빠른 시일 내에 국내 이차전지 셀, 소재 업체들의 중장기 실적 추정치가 상향 조정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며 "향후 국내 이차전지 업종 주가를 결정짓는 기업가치와 멀티플(주가 배수) 모두 현 수준에서 상승할 가능성은 당분간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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