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거기 맞아? 노인 고무신 사던 시장, 전국민 핫플 된 비결[르포]

머니투데이 예산(충남)=이창명 기자 2024.06.1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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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노믹스가 바꾸는 지역소멸]①충남 예산

편집자주 흉물 리모델링·님비(기피·혐오)시설 유치와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Innovative Ideas)'를 통해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I-노믹스(역발상·Inverse concept+경제·Economics)'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비영리단체(NGO) 등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역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재래시장과 빈집, 발길 끊긴 탄광촌과 교도소, 외면받는 지역축제 등이 전국적인 핫플(명소)로 떠오르면서 지방소멸 위기를 타개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직접 이런 사례를 발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지난달 31일 예산시장 임시 천막안에 놓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방문객들의 모습/사진=이창명 기자지난달 31일 예산시장 임시 천막안에 놓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방문객들의 모습/사진=이창명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3시간을 운전해 찾아간 충남 예산시장.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실행한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현재는 예산시장 주건물이 안전문제로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20여개 음식점들이 밖으로 나와 '예산장터광장'이란 임시 천막을 달고 손님맞이에 나선 상황이다. 이날 오후 1시쯤부터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과 젊은층 등 다양한 방문객들이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테이블이 금세 채워졌다. 주변엔 주차장 빈자리를 보고 들어오는 차량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대낮부터 불판을 빌려다 삼겹살을 굽는 자리가 적지 않았고, 5000~7000원 하는 다양한 메뉴를 사서 가져다 나눠먹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예산시장 관리 매니저들은 "지금은 리모델링 기간이고 평일 낮이라 고객이 평소보다 적은 편"이라며 "저녁부턴 자리가 없다"고 귀띔했다.



예산군은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89개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된다. 주민등록 인구는 7만8359명(5뭘말 기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산군에 따르면 지난해 예산시장에 온 방문객이 370만명에 달했다. 올해도 벌써 210만명(이달 2일 기준)이 다녀갔다. 지난해 9월1일부터 사흘간 열린 예산 맥주페스티벌엔 24만6000여명이 몰렸다. 최근까지도 평일 1만5000여명, 주말 2만5000여명이 매일 예산시장을 들르고 있단게 예산시의 설명이다.

예산시장에서 판매하는 카스테라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이창명 기자예산시장에서 판매하는 카스테라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이창명 기자
예산시장 일대만 살짝 벗어나도 예산군은 다른 지방 소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시장에 가까워지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낡은 건물의 매력을 살린 '뉴트로' 감성의 상가들과 새 단장을 기다리고 있는 건물들도 많이 보이고, 리모델링이 한창인 시장 주건물 안에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후 3시부터 판매하는 카스테라가 유명하다고 해서 가봤지만 이미 기다리는 줄이 길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예산시장의 변신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지역 상인들도 놀랍단 반응이다. 충남 지역 안에서도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예산군이 불과 1년새 전국 각지에서 찾는 명소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시장은 이전까지 예산군의 골칫덩이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떡집을 운영했다는 한 떡집 점주는 "다른 시골 시장과 마찬가지로 고령의 노인들이 고무신을 사러 오는 이미지"였다며 "여자화장실이 무서워서 가지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 이렇게 사람이 많은게 신기하다"고 전했다.

아예 업종을 전환한 가게도 있다. 한 업주는 최근까지 시장 안에서 갈치를 팔다가 지난주부터 5000원짜리 돼지고기 국밥을 팔기 시작했다. 그는 "갈치가 너무 비싸서 경쟁력이 없다고 보고 아예 국밥을 만들어 팔아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미 예산시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과 지역의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무엇보다 예산시장이 지역특산물인 사과와 쌀을 활용해 과일음료나 막걸리를 제조해 성공시킨 사례들에 관심이 높다.
예산시장 장터광장 임시천막의 외부모습/사진=이창명 기자예산시장 장터광장 임시천막의 외부모습/사진=이창명 기자
그간 예산시장이 안착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다들 단숨에 대박이 터졌다고 짐작하지만 준비기간이 예상보다 길었다. 2018년 8월 예산군이 국토교통부의 공모사업에 선정된 후 운영하던 신활력창작소 안에 백 대표가 운영하는 더본외식산업개발원이 자리를 잡은게 출발점이다. 이때부터 기업과 지자체가 손을 잡고 5년6개월간 꾸준히 공을 들여 키운 결과물이 예산시장인 셈이다.


게다가 방문객이 늘어 임대료를 올리는 건물주와 쫓겨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임차상인이 나오면서 1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대도시 상권에서나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몸살을 앓기도 했다. 백 대표가 재단을 통해 건물을 사들이면서 갈등이 봉합되긴 했지만 또다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없단 점에서 예산군의 고민도 깊은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예산군 안팎에선 "예산시장 덕분에 지역경기가 살아난 것만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예산군이 지난해 89개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인구가 증가한 9개 지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9개 지역 중 사실상 대도시권인 대구 서구와 부산 동구 다음으로 인구가 많이 증가(969명)했다. 내포신도시 등을 통해 정주 인구가 늘어난 영향이 컸다. 여기에 예산시장과 같은 지역상권 활성화로 지역으로 오는 생활인구까지 늘어난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단게 예산군의 분석이다.

맹영주 예산군 경제팀장은 "정확한 경제효과까지는 집계되지 않지만 지역 내에서 소비가 늘어난 것은 긍정적"이라며 "예산시장도 올 9월 오픈스페이스 재오픈을 목표로 리모델링을 하고 주차장도 더 확보하는 등 준비 중인 다양한 사업들이 있어 지역사회에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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