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두 발 달린 모빌리티를 압도하는 게 네 발 달린 자동차다. 인도에서는 흉기가 될 수 있지만 도로 위 네 바퀴 모빌리티 앞에선 두 바퀴 원동기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물론 네 바퀴 세계에도 서열은 있다. 경차는 중형차 앞에서, 중형차는 대형차 앞에서 꼬리를 내린다. 여하튼 양보는 자신이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많든 적든, 크든 작든 간에 바퀴들은 도로나 인도를 내달린다. 과속이나 신호위반 단속 카메라만이 이들의 천적이다.
서울대 김화진 교수가 최근 출간한 '지정학과 모빌리티'에 따르면 모빌리티 수단을 장악하는 자가 권력과 부를 장악한다. 이동성이 높은 사람이나 집단이 더 많은 기회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모빌리티는 다양한 정보와 자원을 얻는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바꿔 말하면 운송수단의 통제는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운송수단은 정보와 문화의 전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제함으로써 특정 정보나 문화, 그리고 사상이 보급되는 방식과 범위를 조절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사람과 상품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물리적 모빌리티의 혁신을 주도하지만 역설적으로 디지털 모빌리티는 철저히 통제한다. 중국발 모빌리티 리스크는 새로운 지정학 경쟁을 초래한다. 자율주행차, 전기차, 드론 등 물리적 모빌리티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에서 데이터 흐름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모빌리티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은 물론 여러 국가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빌리티는 곧 권력이다. 한 가지 큰 차이라면 무정부성을 특징으로 하는 국제정치에서 모빌리티 권력을 쥔 국가로부터 약소국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라는 점이다. 하여 모빌리티를 우습게 보지 말지어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