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선 26척 격파하며 부상 단 1명…이순신, 전설의 시작 [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전형주 기자 2024.06.1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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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거제 옥포 앞바다에서 첫 전투를 치러 대승을 거뒀다. /사진=뉴스1 충무공 이순신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거제 옥포 앞바다에서 첫 전투를 치러 대승을 거뒀다. /사진=뉴스1


1592년 임진년 6월16일. '성웅' 이순신은 왜군에 빼앗긴 조선의 바다를 되찾아왔다. 거제 옥포에서 왜척 26척을 섬멸해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했다. 그해 이순신과 조선군이 올린 첫 승전보다.

조선군은 이틀에 걸쳐 세 번 싸웠다. 16일 아침 대승을 거둔 조선군은 이날 오후와 그 다음 날에도 왜적을 추격해 격파했다.



임진왜란 1년 전부터…이순신 "전쟁 준비하라"
/사진=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사진=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
승전 배경엔 무엇보다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1591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군사 물자를 점검하고 훈련을 독려하는 등 만일에 있을 전쟁에 대비해 나갔다.



거북선을 건조하고 화포를 개량해 지자포(地字砲)와 현자포(玄字砲)를 시험 발사하기도 했다.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는 "동헌 뜰에 화대(火臺) 돌기둥을 세웠다"거나,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이르러 공사례(公私禮)를 마치고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長箭)과 편전(片箭)은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했으나 전투선은 어느 정도 완전해 기쁘다" 등 내용이 담겼다.

왜군이 한양을 점령한 다음 날인 1592년 6월13일(음력 5월4일), 이순신은 판옥선 24척과 협선 15척을 이끌고 첫 출사표를 냈다. 6월15일에는 통영 앞바다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이 이끄는 판옥선 4척과 협선 2척도 합세했다.


이튿날 정찰대가 거제 앞바다에서 왜선 50여척을 발견하고 신기전(神機箭·화약을 장치한 화살)을 쏴 본대에 알려왔다. 이순신은 심호흡하고 군사들한테 명령했다.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과 같이 무겁게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

이순신 첫 전투…왜선 26척 격파
/사진=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사진=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
옥포 선창엔 도도 다카토라가 이끄는 왜선 50여척이 정박해 있었다. 배에서 내려 노략질을 하고 있던 왜군은 조선군을 발견하고 선봉 6척을 내보냈다.

왜군의 조총은 조선군의 대포에 상대가 안 됐다. 이순신은 조총의 사거리가 100m로 짧다는 것을 확인, 거리를 유지하며 집중포화를 쏟아부었다. 순식간에 왜선 26척이 격침됐다.

아군 피해는 한 척도 없었다. 전사자도 없었으며, 가벼운 부상자만 한 명 나왔다.

1차전을 끝낸 이순신은 곧바로 영등포(거제시 장목면 구영리)로 전선을 옮겼다. 오후 4시쯤 멀지 않은 바다에 왜선 다섯 척이 지나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이순신은 배를 끌고 급히 추격에 나섰다.

합포(경남 마산시) 앞바다에서 이순신과 마주한 왜군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도망쳤다. 이순신은 적선 다섯 척을 남김없이 깨뜨리고 불태웠으며 남포(창원 구산면 남포리) 앞바다로 내려와 진을 치고 밤을 보냈다.

23전 23승 전설의 시작

다음 날 아침, 진해 고리량(창원시 구산면 구복리 앞바다)에 왜선이 정박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이순신은 즉시 출동해 고리량 일대를 수색했지만, 적선을 발견하지 못해 돼지섬으로 불리는 저도를 지나 적진포까지 갔다.

적진포 어귀에는 왜선 13척이 정박해 있었다. 왜군은 이곳에서도 노략질을 하고 있었는데, 조선군 규모를 보고 겁을 먹어 산으로 도망쳤다. 왜군이 혼비백산한 틈을 타 조선군은 왜선 13척을 모두 격파하며 옥포해전을 마무리했다.

임진왜란 최초의 승전이자 '23전 23승 신화'의 시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제해권을 장악한 조선군은 호남 곡창지대를 보호하고 왜군의 보급로를 끊어 전세를 바꿔놨다.

이순신은 7월 8~20일 전개된 사천해전에서 거북선을 활용해 대승을 거뒀고, 당항포해전, 한산도 대첩에서도 연이어 승전보를 올려 임진년 조선에 쳐들어온 왜군을 모조리 격퇴했다.

옥포에서 혼쭐이 난 적장 도도는 정유년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에게 다시 도전했지만 대패해 31척을 잃었다.

한산도 대첩에서 대패한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회고록에서 이순신에 대해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며칠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 하는 장수로서 직무를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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