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대처만 잘했어도…" 훈련병 사인 밝혀지자 아쉬워한 의사들, 왜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4.06.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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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뉴스1) 최성국 기자 = 군기 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숨진 육군 훈련병의 영결식이 30일 오전 전남 나주 한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2024.5.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나주=뉴스1) 최성국 기자(나주=뉴스1) 최성국 기자 = 군기 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숨진 육군 훈련병의 영결식이 30일 오전 전남 나주 한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2024.5.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나주=뉴스1) 최성국 기자


취침 시간에 말을 했다는 이유로 군기 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이틀 만에 사망한 훈련병 A씨의 사망 원인이 '열사병'으로 밝혀지면서 "초기 대처만 잘했어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소견이 나왔다.

13일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 강형구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열사병이 나타났을 때 환자의 체온부터 떨어뜨리고, 수액 치료를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게 생명을 살리는 관건"이라며 "열사병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빨리 대처했다면 사망까지 이르지 않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12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A씨는 육군 제12사단에서 지난달 23일 오후 4시 30분부터 타 훈련병 5명과 함께 완전군장을 멘 채 선착순 뛰기, 팔굽혀 펴기, 구보 등 얼차려를 받았다. 그는 구보 중이던 오후 5시 20분경 쓰러졌고, 의무병이 달려와 맥박을 체크했는데 이 모습을 본 중대장이 "일어나, 너 때문에 애들이 못 가고 있잖아"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하지만 A씨는 일어나지 못했고 신병교육대 의무실과 속초의료원을 거쳐 이날 저녁 9시 37분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떨어진 혈압, 높아진 체온은 회복되지 못했고 25일 오후 3시에 결국 사망했다.

앞서 군 소식통에 따르면 A씨에게선 '횡문근융해증' 의심 증상이 나타났다고 전해졌다. 횡문근융해증은 무리한 운동, 과도한 체온 상승 등으로 근육이 괴사하면서 세포 안에 있는 근육 성분이 혈액으로 방출되면서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급성 콩팥 손상, 대사 이상이 있으면 초기에 집중적인 수액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래도 좋아지지 않으면 투석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군인권센터가 사인(열사병)을 밝히기 전 응급의학과 의사들 사이에선 A씨의 사인이 횡문근융해증이 아닌, 열사병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왔다. 열사병 환자 대다수에서 횡문근융해증이 동반되는 것도 한 이유로 거론됐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는 지난달 29일 기자에게 "횡문근융해증이 나타났고 신장 투석을 빨리 못했다고 해서 사망까지 이를 가능성은 적다. 그의 사인은 열사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며 "열사병은 초기 대처가 중요한데, A씨에 대한 응급의료 대응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열사병 초기에 체온을 빨리 떨어뜨렸어야 했는데 그걸 놓친 게 아닌가 싶다"며 "게다가 날씨까지 더운 상태에서 A씨가 무거운 군장을 메고 얼차려까지 받았다면 체온이 더 빠르게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형구 교수는 과거 국군수도병원에서 응급의학과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20㎏ 군장을 메고 행군하다가 열사병으로 쓰러져 국군수도병원에 실려 오는 환자가 꽤 있었다"며 "열사병 진료 경험이 많은 의사라면 증상만 봐도 열사병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강릉아산병원이 A씨에 대해 작성한 사망진단서(왼쪽)와 사망 기록지(오른쪽). 군인권센터가 12일 공개한 이들 문건엔 A씨의 사망 원인으로 각각 열사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 열사병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가 적혀 있다. /사진=군인권센터강릉아산병원이 A씨에 대해 작성한 사망진단서(왼쪽)와 사망 기록지(오른쪽). 군인권센터가 12일 공개한 이들 문건엔 A씨의 사망 원인으로 각각 열사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 열사병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가 적혀 있다. /사진=군인권센터
열사병은 온열 질환(일사병, 열사병, 열경련, 열 실신) 중 가장 심한 단계다. 체온 조절 중추가 기능을 잃어 땀 배출 기능이 고장 나면 체온이 39.5도 이상 치솟아 의식을 잃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열사병은 노인이나 심장질환자, 치매 환자, 알코올 중독자, 정신질환자 등에서 오랜 기간 고온다습한 환경에 노출됐을 때 발생한다.

땀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열사병 같은 온열 질환이 아닐 것으로 오인했다가 초기 치료를 놓치는 경우도 적잖다. 실제로 열사병 환자 2명 중 1명에게선 땀이 나지 않는다. 그 대신 오심·구토가 심하고 의식 변화가 나타난다. 심부체온은 40도가 넘어간다. 이 경우 환자를 즉시 그늘로 옮기고 옷을 풀어 시원한 물수건으로 닦으며, 빠르게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열사병 환자에게 찬 물을 마시게 하는 건 체온을 낮추는 데는 도움 될 수 있지만, 의식이 없는 경우 질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가천대 길병원 응급의학과 양혁준 교수는 "열사병이 발생했다면 환자를 시원한 곳에 눕힌 뒤 신속히 병원에 이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병원에선 열사병 환자가 실려 오면 체온을 낮추기 위해 '쿨링 요법'을 실시하는데, 보통은 차가운 생리식염수를 투여하거나, 미지근한 물을 몸에 발라 기화열을 이용해 체온을 떨어뜨린다. 수액을 다량 주입하기도 한다. 강 교수는 "열사병 증상 초기에 수액을 3~5ℓ는 넣어줘야 합병증인 급성 신부전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열사병이 나타났을 때 이런 대처를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달라질 수 있는데, 그 효과는 고령자보다 젊은 사람에게서 더 크다는 게 의사들의 조언이다. 강 교수는 "A씨처럼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열사병이 나타났고, 초기 처치만 빨랐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고령자보다 훨씬 더 크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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