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양보만 해서 짠한 '유기견'…"저도 집밥 먹고 싶어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4.06.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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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날 - ④] 21년 여름부터 4년째 팅커벨프로젝트서 보호 중인 노라
길바닥에 버려진 뒤 새끼 셋 낳아 기르다 구조, 안락사 위기서 살아나
친구들 귀여워해달라고 난리 칠 때, 매번 양보하고 뒤에서 서성이던 개
"친한 친구들 떠나는 뒷모습만 바라본 지 3년, 가족이 되어주세요"

편집자주 10일. 유기동물이 보호소에 들어오면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기한이 끝나면 대부분 '안락사' 됩니다. 잠깐만 살려주어도 두 번째 기회가 생깁니다. 가족을 만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거지요. 그게 '임시보호'입니다. 그리 열한 번째 날을 선물해준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노라의 봄날은 언제쯤 올지. 꽃피는 계절에 가족과 오롯이 꽃놀이를 즐길 날은 또 언제일지. 기록의 힘으로 노라에게도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귓가에 꽃을 꽂고 포즈를 취한 노라./사진=팅커벨프로젝트노라의 봄날은 언제쯤 올지. 꽃피는 계절에 가족과 오롯이 꽃놀이를 즐길 날은 또 언제일지. 기록의 힘으로 노라에게도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귓가에 꽃을 꽂고 포즈를 취한 노라./사진=팅커벨프로젝트


다들 어루만져달라고 다가오는데, 뒤에서 서성이기만 하던 까만 개가 있었다.

쪼그만 점박이는 무릎에 올라오고, 털이 북슬북슬한 개는 얼굴을 핥고, 갈색 강아지는 따뜻이 몸을 비빌 때. 그리 친구들이 귀를 젖히고 반갑다고 난리가 났을 때.

의젓하고 그윽한 옆모습. 어찌나 이리 어른스러운지./사진=팅커벨프로젝트의젓하고 그윽한 옆모습. 어찌나 이리 어른스러운지./사진=팅커벨프로젝트
그 까만 개. 귀가 쫑긋하고 동그란 눈은 까맣고 이마의 흰 점은 마치 두 개의 눈처럼 보이던. 그 개는 뒤에서 날,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다가오진 않았으나 떠나지도 않았다.



사람 손길을 좋아해 이리 애교도 많다. 발라당 누운 노라. 눈 위 두 개의 흰 점도, 눈처럼 보여 귀엽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사람 손길을 좋아해 이리 애교도 많다. 발라당 누운 노라. 눈 위 두 개의 흰 점도, 눈처럼 보여 귀엽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그런 존재가 잘 보이는 편이라 더 신경 쓰이고 마음이 갔다. 궁금한 걸 물었다.

"이 아이 이름은 뭔가요, 대표님."



"아, '노라'에요. 참 의젓하지요. 우리 노라도 집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너무 착한데…."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 간 기자. 친구들이 벌써 양쪽 무릎 하나씩을 차지할 때, 노라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내밀어주니 다정하게 배를 보였다. 천천히 쓰다듬어 주니 좋아했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 간 기자. 친구들이 벌써 양쪽 무릎 하나씩을 차지할 때, 노라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내밀어주니 다정하게 배를 보였다. 천천히 쓰다듬어 주니 좋아했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내 물음에,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가 답했다. 노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 애틋함 비슷한 게 느껴졌다.

노라도 이리 오렴, 뒤에만 있지 말고. 그리 말하며 손을 조심스레 내밀었을 때, 노라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발라당, 뒤집더니 배를 보여주었다. 보드라운 털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사랑받고픈 마음은 다 같은 거였다. 다만 마음을 꺼내놓는 게 친구들보다 느렸을 뿐.

버려진 길바닥에서, 세 강아지 '엄마'가 되었다
노라가 길에서 새끼 세 마리를 돌보다 구조돼 시 보호소에 들어왔을 때 모습. 귀가 잔뜩 내려간 채 겁 먹은 표정./사진=팅커벨프로젝트노라가 길에서 새끼 세 마리를 돌보다 구조돼 시 보호소에 들어왔을 때 모습. 귀가 잔뜩 내려간 채 겁 먹은 표정./사진=팅커벨프로젝트
하마터면 죽을뻔했던 개였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길바닥에서 새끼 셋을 낳았다.

길에서 구조돼 시 보호소로 왔다. 아직 꼬물이였던 새끼들은 빠르게 입양되었으나, 당시에도 4살로 추정되었던 노라는 보호소에 그대로 남겨졌다.

모든 유기견에게 똑같은, 공고 기한 10일이 주어졌다. 그 안에 자신을 살려줄 가족을 찾아야 했다.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열흘이 쏜살같이 또 속절없이 지나갔다.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 구조돼 다행히 안락사를 막았단다. 이후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서 지내게 되었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에 구조돼 다행히 안락사를 막았단다. 이후 팅커벨프로젝트 입양센터에서 지내게 되었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노라는 '안락사 대상'이 되었다. 죽음만큼은 막으려 살려준 곳이 있었다. 서울동물복지지원센터였다. 그러나 몇 달이 흘렀어도 가족을 찾지 못했다. 센터 역시 오래 지낼 수 없는 터라 노라가 맘 편히 지내긴 어려웠다.

인연이 닿아, 유기동물 구조 단체인 팅커벨프로젝트에서 노라를 품어주었다. 그게 2021년 무더운 여름이었다. 이곳 입양센터에선 안락사 염려 없이, 입양 갈 때까지 계속 살 수 있었다. 평생을 책임져주면서도,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돕는 '임시 보호'인 셈이었다.

팅커벨 입양센터에서 지내며 마음을 회복했는지, 내려갔던 귀도 쫑긋해진 노라. 환히 웃고 있다. 그래서 좋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팅커벨 입양센터에서 지내며 마음을 회복했는지, 내려갔던 귀도 쫑긋해진 노라. 환히 웃고 있다. 그래서 좋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황 대표는 입양센터 유기견들을 아끼면서도 늘 '하숙생'이라 불렀다. 마치 잊지 않으려는 다짐 같았다. 여긴 평생 머물 곳이 아니라고, 다들 집밥 먹으러 가야 한다고. 살뜰하게 돌봐주면서도 그게 한결같은 그의 바람이었다. 가족 만나러 떠나는 뒷모습에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동생들 싸움 말리고 괜찮나 살펴보던…'속 깊은 개'
친구들과도 이리 잘 지내고, 길에서 새끼들을 돌봤던 기억 때문인지 유독 잘 챙긴다고. 곁에 나란히 엎드린 노라와 냉이(아래 하얗고 복슬복슬한 개)/사진=팅커벨프로젝트친구들과도 이리 잘 지내고, 길에서 새끼들을 돌봤던 기억 때문인지 유독 잘 챙긴다고. 곁에 나란히 엎드린 노라와 냉이(아래 하얗고 복슬복슬한 개)/사진=팅커벨프로젝트
누가 그리하라고 역할을 주지도 않았건만. 노라는 입양센터에서 동생들을 스스로 돌보았다. 버려지고 상처받고 죽을뻔했다가 여기에 들어온 걸, 다 같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안다는 듯.

아기 강아지 둘(왼쪽 탄탄이, 오른쪽 용이, 둘다 입양)을 돌보느라 힘을 쭉 뺴던 노라(왼쪽)./사진=팅커벨프로젝트아기 강아지 둘(왼쪽 탄탄이, 오른쪽 용이, 둘다 입양)을 돌보느라 힘을 쭉 뺴던 노라(왼쪽)./사진=팅커벨프로젝트
팅커벨프로젝트 간사 말이 이랬다.

"아이들끼리 장난치고 놀다가 과해서 '깨갱' 소리가 날 때가 있어요. 저희가 달려가 살펴보기도 전에 노라가 이미 가 있어요. 놀란 친구에게 다가가 괜찮은지 살피고요. 사이가 좋지 않은 녀석들끼리 싸울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노라가 두 친구 사이에 들어가요. 그러지 말라고 말립니다. CCTV를 돌려보지 않아도 당사자가 누군지 알아요."

노라에게 장난치는 탄탄이. 노라는 이를 너그럽게 받아준다고./사진=팅커벨프로젝트노라에게 장난치는 탄탄이. 노라는 이를 너그럽게 받아준다고./사진=팅커벨프로젝트
길에서 새끼 셋을 낳고 돌봐야 했던 기억 때문일까. 아기 강아지들을 유독 더 잘 챙긴단다. 귀찮을 수도 있건만. 에너지 넘치는 강아지들 장난을 다 받아주고, 그래선 안 된다고 알려준다고.

개 육아는 힘들다, 네 발 쭉 뻗고 누워 쉬고 있는 노라./사진=팅커벨프로젝트개 육아는 힘들다, 네 발 쭉 뻗고 누워 쉬고 있는 노라./사진=팅커벨프로젝트
그래서 노라는 쉴 틈이 없단다. 꼬마 용이와 탄탄이를 육아하듯 다 돌보았고. 어려서 입양이 잘 된 둘이 집밥을 먹으러 갔고. 조금 쉬나 했더니 이번엔 '냉이'가 와서 놀아달라고 하고. 평상에 못 오르는 냉이를 피해, 거기서 휴식을 취했었다고. 그런데 냉이가 마침내 평상을 정복해 자유자재로 다녀 육아 퇴근이 없단다(흑).

예쁨 받고 싶지만 나서진 못해, 떠나는 뒷모습만 보았다
가만히 누워 만져주는 이에게 애교 부리는 노라. 의젓하고 착해도, 따스한 가족 품이 필요하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가만히 누워 만져주는 이에게 애교 부리는 노라. 의젓하고 착해도, 따스한 가족 품이 필요하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그러니 노라에게 고맙고 짠하면서도, 편히 지낼 수 있는 가족의 품이 간절하겠단 생각이 들었단다. 이젠 돌봄의 짐을 내려놓고 애교 부리고 예쁨 받을 수 있게.

친구 냉이와 장난치는 성격 좋은 노라./사진=팅커벨프로젝트친구 냉이와 장난치는 성격 좋은 노라./사진=팅커벨프로젝트
3개월 된 아기 강아지가 좋은 집에 입양 갔다. 노라가 잘 챙겨주던 녀석이었다. 강아지는 1년 만에 팅커벨 입양센터에 인사하러 왔다. 훌쩍 자란 강아지는 노라를 기억하는지 반갑게 인사했다.

산책하며 헥헥거리는 노라 모습./사진=팅커벨프로젝트산책하며 헥헥거리는 노라 모습./사진=팅커벨프로젝트
간사가 기억한다던 속상한 장면은 이랬다.

"둘이 즐겁게 놀았어요. 그런데 노라가 보호자 냄새를 맡으러 가니, 글쎄 강아지가 노라를 잔뜩 경계하며 지키는 거예요. 사랑을 듬뿍 받더니 지켜야 할 보호자가 생겼구나, 느꼈지요. 많은 걸 보고 경험했을 강아지의 1년과, 입양센터에서 지낸 노라의 길었을 1년이 겹쳐 마음이 짠했습니다. 눈치 빠른 노라라서, 자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아서요."

우리 노라는, 마음을 여는 데 시간도 필요하지만, 이리 쓰다듬어 주는 걸 실은 많이 좋아한답니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우리 노라는, 마음을 여는 데 시간도 필요하지만, 이리 쓰다듬어 주는 걸 실은 많이 좋아한답니다./사진=팅커벨프로젝트
봉사자들이 오면 안아달라, 만져달라, 다들 난리 칠 때 친구들에게 양보만 하던 개. 그러느라 예쁨 받을 기회를 쉬이 얻지 못하고 뒤편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던 개. 표현하고 요구하지 않아 눈에 띄진 않지만, 친해지면 안심하고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는 노라. 아침에 만나면 친구들을 뚫고 들어와 간사에게 뽀뽀해주고, 산책할 때 뒤처지면 의젓하게 기다려주기도 한다고.

귀를 한껏 젖힌 채 반가움을 표현하는 노라./사진=팅커벨프로젝트귀를 한껏 젖힌 채 반가움을 표현하는 노라./사진=팅커벨프로젝트
그런 노라가 꼭 좋은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라와 지내보면 강아지보단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것도 꽤 의젓한 사람 같습니다.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좋은 친구 말이지요. 노라와 함께 센터에 들어와 3년간 동고동락한 '동수'도 7월에 입양 갑니다. 진심으로 노라에게도 좋은 가족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노라가 떠나면 빈자리가 크고 많이 보고 싶겠지만요."

※ 우리 '노라'의 평생 가족을 기다립니다(자랑 및 소개 시간)
늘 양보만 해서 짠한 '유기견'…"저도 집밥 먹고 싶어요"
우리 노라는 평소 호기심이 굉장히 많아요. 사물이나 어떤 물질의 냄새를 킁킁 맡고 탐구하는 걸 좋아합니다. 다른 강아지 친구들에게도 관심이 많아 친구를 만나면 항상 인사하고 싶어 해요.

공놀이를 좋아하고, 노즈워크(개가 코를 써서 하는 후각 활동)도 잘하고, 규칙을 금방 이해할 만큼 똑똑한 친구이고요.
늘 양보만 해서 짠한 '유기견'…"저도 집밥 먹고 싶어요"
노라의 진가를 알려면 시간을 충분히 두고 함께해야 해요. 그러니 입양을 원하신다면 노라와 여러 번 시간을 보내며 친해지시는 걸 추천해요. 간사를 향해 공격성을 내비치는 친구가 있을 땐 곁에 든든하게 서서 지켜줄 줄도 안답니다.
늘 양보만 해서 짠한 '유기견'…"저도 집밥 먹고 싶어요"
사람과 함께 있는 노라는 차분하고 얌전해요. 바로 옆에 엉덩이를 착 붙이고 엎드려 자기도 합니다. 사람과의 스킨십을 좋아해서 발로 툭툭 쳐가며 이뻐해 달라고 어필할 줄도 알고요.
늘 양보만 해서 짠한 '유기견'…"저도 집밥 먹고 싶어요"
입양센터에서 동생들을, 친구들을 다 돌봐주었으면서, 떠나는 뒷모습만 바라본 지도 3년이 다 되어갑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친구들 빈자릴 느끼며 나만 두고 어디 간 걸까, 난 언제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맘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늘 양보만 해서 짠한 '유기견'…"저도 집밥 먹고 싶어요"
실은 내색은 자유로이 못 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되뇌었을까요. 자기도 맘껏 사랑받고 싶다고, 가족이 필요하다고.
늘 양보만 해서 짠한 '유기견'…"저도 집밥 먹고 싶어요"
부디 노라의 가족이 되어주세요. 오늘도 기다립니다.

입양 문의는 팅커벨 입양센터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양보만 해서 짠한 '유기견'…"저도 집밥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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